"어디야?"란 잘 모르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가 어디야?"란 낯선 모습이나 이국적인 풍경을 만났을 때 묻는 말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 부모나 조부모 등 관계의 언어를 배우고 나서 사회적인 언어를 배우는 단계에서 꺼내는 첫 단어가 "어디야?"란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요즈음 손주가 "어디야?"란 말을 어디서 배웠는지 하루에 수십 번씩 질문해 댄다. 그럴 때마다 여기가 어디라고 손주가 알아듣던 알아듣지 못하든 답변을 해준다.
손주가 부모나 할머니 할아버지란 관계의 언어에서 사회적인 말을 배우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모처럼 손주가 딸과 함께 길동 할머니네 집에 와서 놀다 갔다.
손주는 자기가 사는 집과 주변 환경이 달라서 그런지 집에서나 밖에 나가서나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신기한지 신나게 뛰어놀았다. 그리고 오후에 문정동 집에 데려다주러 가는데 차를 타고 가면서도 연신 "어디야?, "어디야?"라고 묻길래 딸과 함께 일일이 여기는 어디라고 답해주었다.
손주는 태어난 지 이십 이 개월이 되어가는데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이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하는 말을 제법 따라 하기도 하고 자기가 생각나는 단어를 사용해서 묻기도 한다.
손주가 사용하는 "여기가 어디야?"라는 말은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서 존재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중요한 말이다. 세상에 태어난 것을 깨닫거나 무의식 중에 있다 의식이 깨어났을 때 찾는 말이 "여기가 어디야?"란 말이다.
여기는 이곳이란 장소적 의미이고 어디야는 자신이 어디에 위치해 있나 즉 자신의 존재와 위치를 확인하고자 묻는 말이다. 아마도 손주는 성장해 가면서 지속적으로 "여기가 어디야?"란 말을 사용하거나 묻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어떤 대답을 해주느냐에 따라 성장해 가는 길이 달라지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는 시기도 결정되지 않을까. 아기가 묻는 단어는 새로움이 아니라 자신의 부재를 찾는 또 다른 길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태어났을 때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모른다. 그러나 성장해 가면서 자신이 누구이고 자신이 어디에 위치해 있고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는지를 깨닫게 된다.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여기가 어디야?"라고 묻는 것은 사회를 배우기 위한 철학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수다. 그 신호수를 어떻게 알아듣고 답해주느냐에 따라 존재 철학의 깨달음과 사회적 성장이 달라진다.
손주가 "어디야?"라고 내게 물을 때면 가끔 손주에게 반문해서 물어본다. "글쎄! 여기가 어딜까?"라고 반문하면 손주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다시 "할베, 어디야?"라고 묻는다.
손주가 내게 "어디야?"라고 하면 손주와 내가 이 세상에 같은 사람으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묻는 것만 같다. 이 세상에 동일한 존재가 되었으니 그 세상에 자신도 포함시켜 달라는 외침의 소리로 들려온다.
앞으로 순주가 "어디야?"란 말에서 어떤 말로 확장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갈 것인지 방향성을 모르겠다. 어떤 철학과 관련된 질문을 하든 어떻게 답변할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손주와 잘 지내고 싶은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