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가는 곳이 어디든 가야 할 목적지를 정하면 주저 없이 길을 나선다. 그러나 가는 목적지가 어디냐에 따라 몸과 마음의 긴장감은 달라진다.
낯선 여행지나 보고 싶은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몸과 마음이 가볍지만 병원이나 장례식장과 같이 몸이 아프거나 돌아가신 분을 만나러 가는 길은 몸과 마음이 무겁고 착 가라앉는다.
특히 치과를 가는 날은 다른 날에 비해 몸과 마음이 개운치가 않다. 치아가 좋지 않아 사십 대 중반에 잇몸 수술과 임플란트 3개를 심었고, 육십 대 초반에 임플란트 1개를 해 넣었다.
치아가 좋지 않은 것은 사연이 깊다. 시골에서 태어나 대학 졸업 때까지 치아 관리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때까지 치과 의사에게 치아 상태가 어떠하다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말조차 듣지 못했다.
그러다 직장에 다니며 치통을 앓고 난 후 치과에 가서야 치아상태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치과를 늦게 찾아갔으니 현상유지도 어려워 잇몸 수술과 어금니를 빼고 임플란트를 하게 된 것이다.
자기 몸은 정기적으로 진단을 받아가며 관리해야 한다. 몸은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치아도 마찬가지다. 치아도 정기적인 검진과 스케일링을 받아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사십 대 중반 이후부터 일 년에 한 번씩 정기 검진과 스케일링을 받다가 육십 대 이후에는 육 개월마다 임플란트 정기 검진과 스케일링을 받으러 치과에 다닌다.
하지만 말이 육 개월이지 날이 차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하루이틀 미루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다다라서야 예약된 날짜에 맞추어 뭉그적거리며 치과를 찾아간다.
치과 가는 날은 고연 시리 전날부터 마음이 긴장되고 신경도 예민해진다. 치과에 가서 용접기로 쇠를 자르듯 하는 공구 돌아가는 소리를 어떻게 듣고 고통을 참지 하는 생각을 하면 얼굴이 저절로 굳어진다.
집을 나서서 치과에 가려고 전철을 타면 마음에 긴장감이 팽배해진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치과에 가지 않고 치아를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치과에 꼭 가야만 하나 하는 억측과 의문이 꼬리를 문다.
그러다 막상 치과에 도착해서 의사의 검진을 받고 간호사에게 스케일링을 받기 시작하면 몸은 자포자기 상태로 변한다. 치과에서 내가 선택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의사와 간호사의 말과 눈과 손에 맡길 수밖에 없어 몸이 수동적인 자세로 변한다. 스케일링을 받기 위해 의자를 뒤로 젖혀 몸을 누이면 몸은 꼼짝하지 못한다.
의자에 누워 앞면을 가리고 입을 벌린 채 한 삼십여분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들어가며 스케일링을 받고 나면 눈가에 이슬도 비친다. 그렇게 스케일링이 끝나면 무슨 큰일을 한 것처럼 속이 시원하고 마음도 편안해진다.
치과나 병원은 자주 갈 곳이 못 된다. 이 세상에 치과나 병원 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어쩔 수 없이 중한 병을 앓는 사람을 빼고는 치과나 병원에 찾아가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치과에서 육 개월 후 검진 예약을 잡아놓고 치과 문을 열고 나서면 몸과 마음이 후련하다. 사람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표정이 다르듯이 치과도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표정이 다르다.
치과를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되면 마치 풀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앞으로 육 개월은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진다.
집에서 치과까지 가는 길이 멀어서 집 근처에서 잘하는 치과를 찾아보려 한다. 의술 발달로 왼만한 치과에서 임플란트를 하는 시대라서 정기검진과 스케일링을 굳이 이름 있는 치과에 가지 않아도 될 듯해서다.
다음 치아 정기검진은 어디에서 받아야 할까 고민이다. 그간 오 년간 찾아갔던 치과인데 다시 단골 삼아 다른 치과를 찾으려니 이 또한 마음에 긴장을 주고 고통이 따른다.
어떤 치과에 가서 검진을 받든 스케일링을 하는데 소리가 덜 나고 아프지 않고 치아도 잘 봐주고 게다가 치아에 대한 건강한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는 치과와 의사를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