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빗물

by 이상역

삶이란 무엇일까. 죽음은 어떻게 맞이할까. 어제는 옛 동료 부인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서 빗속을 뚫고 조문을 다녀왔다. 안양장례식장을 찾아가는 길은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쓸쓸함을 더했다.


옛 동료와는 김포공항출입국 시절에 만나서 근 오십여 년을 일 년에 서너 번씩 만남을 가져왔다. 지난해 가을 남산에서 부부동반으로 만났을 때 건강해 보이던 부인의 부고를 보고 깜짝 놀랐다.


카톡에 부고장이 떴을 때는 동료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나 하고 생각했다. 자세히 읽어보니 동료 부인의 부음 소식이었다. 삶과 죽임이 백지장 한 장의 차이처럼 엷다는 생각이 든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조문을 마치고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인은 몇 해 전에 암 수술을 받고 완치되어 지내다 두 달 전쯤 몸이 좋지 않아 진료를 받아보니 온몸에 암이 전이되었다고 한다.


의사가 동료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듣고 앞이 캄캄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동료와 부인과 자식들은 얼마나 마음의 상심이 컸을까. 통증과 슬픔을 안고 세상을 떠난 부인의 고통은 형언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암이나 암은 완치라는 말은 없는 듯하다. 완치란 말을 듣고 검진을 받다 한순간 방치해서 다른 곳으로 전이되면 곧바로 죽음에 직면하는 것이 암이다.


동료의 아들은 결혼해서 분가했고 딸은 아직 결혼하지 않고 부부와 살고 있다. 부인은 육십 초반인데 너무 이른 나이에 삶을 마감한 것 같다. 건강 백세 시대에 육십은 청춘이라는데 애통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조문을 끝내고 장례식장 현관에 붙은 돌아가신 분들의 사진을 바라보니 죽음은 나이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십 대부터 팔십 대의 사람이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표정이 슬프게 바라보였다.


장례식장을 나와 주차장으로 가는데 비는 여전히 쓸쓸하게 내리고 있었다. 동료 부인의 죽음에 슬픈 빗물이 더해지니 인생이 참 가련하기만 하고 삶이 허무하게 다가온다.


삶의 날개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허망하게 가는데 무엇을 위해 욕심과 욕망을 앞세우며 살아갈까. 죽으면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고 빈손으로 가야 하는데 누구를 위해 아등바등거리며 살아야 할까.


안양에서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동료와 세상을 떠난 부인의 얼굴이 수시로 떠올랐다. 앞으로 동료의 부인은 영원히 만날 수 없고 동료는 다음 모임에서 만나야 한다.


삶과 죽음이 마치 내일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듯하다. 부인을 떠나보낸 동료의 쓸쓸한 뒷모습과 엄마를 잃은 자식들의 황망하고 허망한 마음이 창가에서 아른거린다.


나도 언젠가 생을 마감하고 저승이란 황야의 길에 들어설 것이다. 그때까지 산 자의 의무를 어떻게 수행하고 갈 것인지 한 번 깊게 생각해 봐야겠다.

삼가 고인의 명목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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