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

by 이상역

해우소는 근심을 푸는 곳 또는 번뇌가 사라지는 곳이라는 뜻이다. 사찰에 딸린 화장실을 해우소로 부른다. 화장실을 점잖게 부르기 위해 사찰에서 불교적 의미를 더해 해우소라고 하는 것 같다.


사찰마다 해우소 입구에 경천동지 할 글귀를 붙여 놓는다. '버리고 또 버리니 큰 기쁨 있어라. 탐·진·치 삼독(三毒)도 이같이 버려 한순간의 죄업도 없게 하리라.’라는 식의 글귀를 붙여놓는다.


생리현상으로 급해진 ‘뱃속의 근심’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뱃속의 근심을 해결하면 개운하듯이, 마음의 번뇌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가벼워질까.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다. 아침마다 구봉산을 산책하다 테니스장 근처만 가면 큰일을 보게 된다. 집을 나설 때는 뱃속이 아무렇지 않다가 테스장이 가까워지면 꾸르륵거리고 더부룩한 느낌이 든다.


오늘도 아침에 구봉산을 걷다 테니장을 지나가다 화장실에 들러 큰 일을 보았다. 칠월 초인데도 큰 일을 보는데 몸과 얼굴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공중화장실은 사방이 꽉 막혀서 가만히 앉아 볼 일을 보는데 땀이 솟구쳤다. 큰 일을 보고 얼굴에 흐른 땀을 찬물로 세수까지 하고 나왔다.


언젠가 양평의 산사를 구경간 적이 있다 해우소에 들러 큰 일을 보는데 사방이 뻥 뚫려서 산 아래가 내려다보이고 바람이 솔솔 들어와서 시원하게 볼 일을 보았다.


구봉산 테니스장 화장실도 산사의 해우소처럼 지으면 안 되는 것일까. 사방을 바라볼 수 있고 바람이 불어오면 큰 일을 보면서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공중화장실도 산사의 해우소처럼 주위 경치를 구경하며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쏘여가며 일을 보게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누군가는 그 사람 참 별 걸 다 참견한다며 구시렁거릴 것이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고 이기적인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렇다고 나만 편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여름날에 공중화장실에 가서 비지땀을 흘리며 일을 본 칙칙하고 우중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화장실 청결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운데 산사의 해우소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것을 바라는 것 아니냐는 원망 섞인 목소리도 들려온다. 기왕에 공중화장실을 지으려면 산사의 해우소처럼 지으라는 이야기다.


사방이 막힌 곳에서 여름에 일을 보면 온몸에 땀이 흐르고 화장지 이용도 곤란하다. 화장실도 경치와 건강과 시원함과 쾌적함을 갖추어 짓는 것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도시화로 농촌의 재래식 화장실도 사라져 간다. 농경사회에서 화장실은 농작물의 소중한 밑거름을 생산하는 곳이다. 재래식 화장실도 산사의 해우소만 못하지만 사방이 어느 정도 바라보였고 바람도 불어왔다.


여름에 화장실에서 근심을 키우는 것보다 산사의 해우소처럼 볼 일도 보고 경치도 구경하고 시원한 바람도 쏘이면 근심과 번뇌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명소로 변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제는 '뱃속의 근심'을 더는 것이 아닌 마음의 진정한 근심을 더는 장소로 공중화장실을 멋지고 아름답게 짓기를 기대하는 것은 나만의 욕심이 아닌 우리 모두의 소망이자 바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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