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을 들다 말고 우는 사람아
두고 온 님 생각에 눈물 뿌리네
망향가 불러주는 고향 아줌마
동동주 술타령에 밤이 섧구나 밤이 섧구나('고향 아줌마', 김진영 작사, 김상진 노래)
고향생각이 나는 날이나 하늘에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고향 아줌마'란 노래가 생각난다. 술잔을 들다 말고 두고 온 님 생각에 눈물을 뿌리며 망향가를 애달프게 불러주던 고향 아줌마.
길가의 주막에 앉아 망향가를 부르며 동동주를 달라고 외치는 고향 아줌마의 눈물 젖은 모습이 그리운 날이다. 김상진이 부른 고향 아줌마는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만난 고향 사람이다.
해질 무렵 친구와 술 한잔 생각나서 주막에 들러 술을 마시다 고향 아줌마를 만나면 반가워하듯이 고향 아줌마는 고향을 생각나게 하고 빗소리에 젖어가는 고향의 향수를 달래준다.
고향 아줌마는 인정이 넘치고 삶의 서러움과 고달픔을 품어주는 사람이다. 고향이란 말만 들어도 정이 가듯이 고향 아줌마는 타향에서 만나는 그리운 사람이자 고향을 떠오르게 한다.
막걸리에 빈대떡을 앞에 두고 불러보는 '고향 아줌마'. 진정한 그리움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리움 하나쯤은 가슴에 껴안고 살아가는 것도 낭만이자 넉넉한 여유로움이 아닐까.
'고향 아줌마' 노래의 클라이맥스는 '망향가 불러 주는 고향 아줌마'라고 목울대를 높여가며 부르는 부분이다. 망향가는 고향을 바라보며 그리움과 서러움에 잠겨 부르는 노랫가락이다.
도시화로 농촌에 사람과 문화가 사라져 가는 시대에 고향 아줌마와 같은 도시의 파수꾼이 필요하다. 도시의 삭막한 분위기를 넉넉하게 품어주고 안아주는 것은 네온사인이 아니라 사람이다.
지금은 변두리 주막집에 앉아 '고향 아줌마'란 노래도 마음껏 부를 수 없는 시대다. 삶이 무엇인지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니 노래조차 마음대로 부를 수 없는 시절이다.
지난 시절 황톳길 옆 주막에 앉아 젓가락 장단에 맞추어 '고향 아줌마'를 목놓아 부르던 때가 생각난다. 노래는 주변 사람과 함께 부를 때 흥도 나고 가슴에 간직한 슬픔과 아픔을 나눌 수 있다.
그런데 노래조차 마음대로 부를 수 없는 시대에 어둡고 침침한 노래방을 찾아가서 부르노라면 흥도 나지 않고 인정 많은 고향 아줌마도 만날 수 없다.
우리네 삶은 문화의 진보가 아닌 퇴보를 추구하며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간 것은 무조건 버리거나 배척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옛 것에서 그리움과 정서적으로 남겨야 할 것은 남겨두는 것이 진정한 문화의 진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상록수의 푸르름처럼 간직할 것은 보존하고 관리해야 한다.
특히 유형적인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산을 보존하는 것이 시급하다. 우리들 마음에 간직한 옛 것의 그리움과 정서를 추구하는 것을 형상화해서 사람들이 찾거나 그리움을 달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향 아줌마는 노랫가락으로 만날 수도 있고 누구나 찾아가서 만날 수 있도록 이미지화해야 한다. '고향 아줌마' 노래는 부르면 부를수록 가슴에 녹아들어 그리움과 인정을 생각나게 하는 원천이다.
대상의 그리움을 눈으로 보거나 달랠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삭막한 도시의 삶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넉넉하고 여유로운 삶이 되지 않을까.
삶은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추구해야 정서적으로 안정이 된다. 이 시대의 진정한 고향 아줌마는 어디서 살아가고 있을까.
이제는 우리들 마음속에 간직한 고향 아줌마를 언제라도 달려가서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늘따라 고향을 떠나올 때 동구에서 잘 살라고 등을 떼밀어주던 고향 아줌마의 얼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