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옛 그림자(수정)

by 이상역

아침에 천변을 걷는데 숲에서 소쩍새가 "소쩍소쩍" 하고 울어댄다.


소쩍새도 영혼이 존재하는 것일까. 어쩌면 저리도 구슬프게 울어댈까. 영혼은 육체에 깃들어 생명을 부여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무형의 실체라는데 소쩍새와 내 영혼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한 곳에 뿌리를 내려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이사 다니며 살아야 할 팔자인가. 누구를 위해 그토록 이사 다니며 살아온 것일까.


세종에 사는 집 계약이 끝나서 주소를 서울 집으로 이전했다. 정부 24에 접속해서 전입신고를 하고 확인차 주민등록초본을 출력하고 적잖이 놀랐다. 초본이 무려 4장이 출력되어 무엇이 잘못되었나 하고 들여다보니 이상이 없었다.


주민등록초본 4장을 펼쳐 놓고 주소 이전을 헤아려 보니 마지막 숫자가 39번이다. 주소 이전도 도로명 주소나 행정구역 변경 외에 대부분 전입으로 인한 것이 28번이고 이사 다닌 횟수를 헤아려 보니 대략 24번은 되는 것 같다.


주민등록초본에 새겨진 글자를 바라보니 내 영혼이 머물렀던 그림자가 어렴풋이 생각난다. 고향에서 결혼하기 전까지 이사 한번 다니지 않고 살다 결혼 후 거의 해마다 주소를 옮겨 다녔다. 주소를 옮겨 다닌 곳도 서울, 경기, 충남, 대전, 세종에 경기와 서울 그리고 세종과 서울은 몇 번 왔다 갔다 했다.

삶에 무슨 사연과 핑계가 그리 많아 이사를 자주 옮겨다닌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떠오르지 않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세상을 이리저리 부유하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이루었을까. 주민등록초본을 들여다볼수록 정상이 아닌 이상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누구는 태어나서 한 곳에서 평생을 산 사람도 있는데 나는 초원의 유목민처럼 이곳저곳을 방랑하며 살아왔다.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해서 살아온 것일까. 내게 이사 다니며 살아가라고 한 사람은 누구일까. 아무리 헤아려도 답이 나오지를 않는다.


인디언은 말을 타고 가다 말에서 내려 자기가 지나온 길을 한참 동안 되돌아본다고 한다. 행여 자기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렸다 영혼이 곁에 다가왔다 싶으면 다시 말을 타고 간단다.


나도 인디언처럼 내 영혼이 따라올 수 있도록 한 장소에서 오래도록 왜 살지 못했을까. 이사를 자주 다녀 내 영혼이 떠나온 곳 어디에 머무르며 세상에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영혼은 지금 어디쯤에 머무르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내 영혼이 한 곳에 진득하니 머무를 수 있도록 살아야 했는데 소쩍새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살아온 것 같다. 어찌 보면 지금도 몸 따로 영혼 따로 사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침에 천변에서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준 소쩍새에게 한번 물어나 봐야겠다. "소쩍새야! 네 영혼은 어디에 두고 왔니?"라고 물으면 소쩍새는 어떻게 대답할까. "내 영혼은 잘 있으니 당신이나 간수 잘해요, 당신의 영혼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알기나 해요?"라고 되묻는 것만 같다.


내 영혼아!

그동안 미안하고 고마웠다. 내가 비록 소쩍새만도 못한 삶을 살아왔지만, 네가 나를 기다리지 않도록 이사 다니지 않고 참된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테니 내게 시간 좀 주고 기다려다오.

앞으로 내 영혼이 육신에 뒤처지지 않도록 한 곳에 오래도록 정착해서 살아가련다. 그리고 육신이 하늘로 소천해서 영혼과 헤어질 때는 지난 삶이 아름다웠노라고 노래를 부르리라. 그날을 위해 육신과 영혼을 풍성하게 살 찌울 수 있도록 남은 삶을 배려하며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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