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에 맺힌 추억

by 이상역

삶은 힘들게 살아낼수록 미래가 아닌 과거를 들추어내거나 아쉬운 마음을 건드린다. 삶이란 오늘이란 현재의 순간을 맞이하며 살아가는 찰나의 시간이다.


빗물이 하늘거리며 대지를 적신다. 아스팔트보다 황토흙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보기에 멋스럽다. 빗물이 흙에 떨어지면 흙먼지를 일으키며 빗방울도 잘게 쪼개져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사람은 왜 미래가 아닌 과거를 그리워하며 사는 것일까. 특히 비가 오는 날에는 과거에 잃어버린 기억이 슬그머니 떠오르며 눈앞에 어슬렁거린다.


하늘을 두껍게 가린 먹구름과 말랑말랑한 빗물이 어우러져 그런 것인지 하염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노라면 빗방울에 맺혀가는 추억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비가 내릴 때 생각나는 것은 고향에서 친구들과 장화를 신고 겉에 우비를 걸치고 천렵을 간 일이다. 아랫마을 친구들과 커다란 다리 밑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시냇가에서 비를 맞아가며 쫄대로 고기를 잡았다.


쫄대를 잡은 사람은 고기가 빠져나갈 통로를 막고 나머지 친구들은 쫄대 안으로 고기를 몰아갔다. 그렇게 두어 시간 시냇가를 휘저으며 민물고기를 잡았다.


시냇가에서 잡은 민물고기에 라면과 갖은양념을 넣어 끓이면 그 맛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친구들과 다리 밑에 둘러앉아 민물고기로 끓인 라면과 소주를 마시던 기억은 비가 내릴 때면 제일 먼저 생각난다.


아마도 그런 시절은 되돌릴 수도 되풀이할 수도 없다. 시냇물도 많이 오염되었고 지금은 어디서든 민물고기를 잡는 것이 금지되어 고기를 잡지도 못한다.


우리가 살아온 시절은 다르게 바라보면 인생의 황금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발전하니 과거의 행동과 시간은 금지어로 바뀌어 지금은 유사한 행동이나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고기잡이 추억을 생각하며 비가 내리는 날 손주를 재우려고 갔더니 손주가 밖에서 잠이 든 채 집에 들어왔다. 해맑게 웃는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조용히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차 안의 라디오에서 빗물에 젖어가듯 흥겨운 노래가 들려왔다. 방실이의 '서울탱고',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김목경의 '부르지 마' 등 주옥같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랑비가 앞 유리창을 적시며 옛 노래가 나오자 차 안이 빗물에 젖어가는 추억의 장소처럼 다가왔다. 그리운 옛 노래가 흐르자 마음은 그 시절 그때로 되돌아간 듯이 낭만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오늘은 이래저래 빗물과 함께 추억을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야겠다. 추억은 몸에 좋은 자양분이고 좋은 것은 지나간 시간을 먹고 자란다. 라디오에서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마음을 들킨 것 같다.


차를 운전하는 내내 '부르지 마 부르지 마 옛 노래를 하고픈 말이 있어도 부르지 마 옛사랑을 추억은 남아있잖아'라는 노랫가락이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며 스며들었다.


빗물에 낭만이란 마음이 스며들자 노래까지 마음을 젖어들게 한다. 사람은 참 과거를 잊지 못하고 사는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나마 자신이 살아온 과거가 없다면 무슨 재미로 무슨 이유로 살아갈까.


오늘따라 가슴속에 묻어둔 낭만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그것을 건드려서 어쩌자는 것인지 그리고 마음을 어디로 데려갈지도 모르는데 자꾸만 자꾸만 건드려댄다.


가랑비에 옷을 적신다는 말처럼 오늘은 빗물에 스며든 낭만이 마음속까지 흠뻑 적셨다. 오늘처럼 가랑비가 내리는 날은 낭만과 추억에 젖어 그리운 과거의 한 시절로 돌아가서 서성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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