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TV에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란 콘서트를 방영했다. 그 콘서트에서 나훈아가 ‘테스 형’이란 노래를 부르자 테스 형이란 말이 사람들 입에 회자되면서 유명해졌다.
이 노래의 가사를 읽어보면 한 편의 詩를 읽는 듯하다. 노랫가락에는 삶과 사랑과 세월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깃들어있다.
나훈아가 부르는 노래를 듣노라면 내게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 같다.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
아! 테스 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세월은 또 왜 저래(나훈아, ‘테스 형’)
이 노래는 나훈아가 무대 밖 세상을 떠돌며 힘들고 지칠 때 아버지 산소를 찾아가 작사한 것이다.
노랫가락이 인생과 사랑, 세월에 대한 고민을 묻는 형식이다. ‘테스 형’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곡이다. 아버지란 단어를 노래에 넣으면 노래가 무거워질 것 같아 아버지 대신 소크라테스를 테스 형으로 바꾸어 작곡했다.
하루를 버텨낸 삶에 고마움을 느끼기도 전에 내일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울 만큼 세상살이가 힘들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아무리 되뇌어도 살아가기가 힘들고 사랑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월이다.
이 노래에서 ‘테스 형’은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아닌 우리의 아버지다. 노래로 아버지에게 힘든 세월을 하소연하며 아버지에게 위로받고 싶은 자식의 마음을 노래로 부른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를 자신에게 질문하고 반문하면 삶의 방향성을 잃고 혼란에 빠질 때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삶에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모를 때가 있다. 사람들은 삶이 힘들고 미래가 불확실할 때 뭔가에 의지해 벗어나고자 교회나 철학관이나 점집을 찾아간다.
옛날의 그리스인도 마찬가지다. 현실의 삶이 녹록하지 않고 삶의 중심을 잃어갈 때 그들도 신을 찾아가 신탁에 의지했다. 그에 대한 해답이 바로 “너 자신을 알라!”다.
어쩌다 ‘테스 형’이란 노래를 이야기하다가 그리스 신전까지 들먹였다. 사람들은 나훈아를 가리켜 가왕이라고 부른다. 가왕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살아가면서 고민하고 힘들 때 산소에 누워계신 아버지에게 달려가 원망도 하고 응석도 부리는 보통 사람이다.
‘테스 형’이란 노래에 ‘너 자신을 알라’라는 노랫말을 넣은 것은 세상을 똑바로 보고 살아가라는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칠 때 가왕이 아버지의 산소로 달려가듯이 대중들도 지치고 힘들 때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라는 의미다.
좋은 소설이나 영화는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대중가요도 마찬가지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나 노래도, 아무나 하지를 못 한다.
내가 이 노래를 작곡해서 불렀다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가왕인 나훈아가 불렀으니 대중에게 파괴력 있게 전달되어 영향을 미친 것이다.
좋은 노래는 좋은 영화나 소설과 다름없다. 예술이 대중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모르지만, 대중에게 회자되는 말에는 전설과 사연이 담겨 있다.
글이나 노래나 진실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깃들어야 대중에게 사랑받는다. 아름다움이란 결국 보편성이다. 미(美)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한 번쯤은 뒤틀고 축약하고 해학적으로 풍자해야 한다.
‘테스 형’이란 노래도 세상에 대한 풍자와 은유를 적절하게 섞어 표현했다. 노래 가사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사의 내용을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무엇을 풍자해서 꾸민 것인지 들여다볼 줄 알아야 아름답게 다가온다.
‘테스 형’ 대신 그 뒤에 숨어 있는 현실이란 세상과 세태를 들여다볼 줄 알아야 노래의 맛이 살아난다. ‘테스 형’이란 노래가 세상에 알려지자 정치인이나 교수나 기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문구로 유명해졌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테스 형’과 관련한 각종 패러디나 글이 넘쳐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평이 상당히 누적되어 있다는 의미다. 대중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준 가왕에게 박수를 보낸다.
오늘날 대중에게 ‘테스 형’의 존재가 필요한 시대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위로받고 상처를 보듬어 안아줄 수 있는 ‘테스 형’이 그립다. 이런 대중을 위로하기 위해 나훈아가 콘서트를 통해 통쾌하게 세상을 향해 크게 한 방 날린 것이다.
대중가요는 국민이 즐겨 부르는 노래다. 국민이 즐겨 부른다는 것은 가슴에 맺힌 한과 슬픔을 노래로 위로받는다는 의미다. ‘테스 형’과 같이 또 다른 ‘테스 형’이 나타나서 국민의 응어리진 한과 지친 삶을 위로해주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 테스 형! 지금 어디에 있나요?” 이제는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세상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쳐봅시다. “너 자신을 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