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이별

by 이상역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가까이 지내던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이다. 내 곁에 머물렀던 사람이 하나둘 저승이라는 광야로 떠나갈 때마다 그들과의 이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매번 허둥거린다.


산 사람과의 이별은 얼굴을 마주하고 웃으며 손을 흔들지만, 저승을 향해 떠나는 사람과는 마음속으로 잘 가라는 인사밖에 할 수 없다.


며칠 전 고향의 들녘을 쏘다니며 부모님 농사일을 거들던 불혹의 중반인 조카와 마지막 이별을 했다. 참으로 많은 사연과 투박한 삶의 보따리를 품고 나누었는데 막상 조카와는 아무런 이별도 나누지를 못했다.


털털거리는 경운기에 나무를 싣고 험한 산비탈을 누비고, 지게에 담배를 지고 밭이랑을 타고 넘던 아스라한 기억을 생각하면 눈물이 시야를 가린다. 조카도 고향을 뛰쳐나와 타향에서 자기의 몸을 돌보지 않고 고생한 끝에 먹고 살 형편이 되자 세상이 그냥 놔두지를 않는다. 세상은 냉정하고 고독한 곳이다.


세상을 영원히 등지는 사람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몸을 아끼지 않고 가정과 직장을 위해 치른 희생이 결국에는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세상에 이보다 더 허망한 마음이 어디에 있을까.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나일까 하는 의문을 아무리 되뇌어도 답은 없다. 조카가 이승을 떠나기 전에 두 번 병문안을 다녀왔다. 서울대 병원 병실에서 근 3개월을 누워있던 조카를 면회 갔더니 한 번은 내게 병원 천장에 매달린 스프링클러가 자꾸만 돌아간다며 말을 건네 왔다.


나는 그것이 왜 돌아가는 것인지 이유는 모르지만 조카가 하는 말에 동의해주었다. 그러면서 조카는 나를 바라보며 그래도 아내와 아이들에게 살아갈 기반을 마련해 주었으니 후회 없다면서 슬픈 눈동자를 굴렸다.


지금도 조카의 애처로운 눈망울이 눈에 선하다. 슬픈 눈망울에 담긴 조카의 쓸쓸한 모습. 나는 차마 조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어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눈물을 훔쳤다.


세상에 잠시라도 더 살아보겠다는 조카의 의지와 간절한 소망. 병실에 뿌려진 조카며느리와 조카 부모와 형제들의 슬픈 눈물. 왜! 인생에는 이런 슬픈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나는 자리를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누구나 운명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초라함에 허망함이 가슴 가득히 밀려왔다. 조카를 면회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겨울의 삭풍이 조카에게 남은 생명의 의지를 송두리째 빼앗아 갔다.


조카는 생명의 의지를 불태우며 하루만이라도 세상에 남기를 고대했지만, 세상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겨울의 매서운 바람 속으로 떠났을 조카의 영혼을 생각하니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누리는 생명은 어쩌면 내 곁을 떠나간 분들이 지켜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외로운 타지에서 마음의 온정에 불을 지피고 겨울의 추위를 따뜻하게 보내는 것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고향의 넋 때문이다.


평소 잔정을 나누어 주시던 아버지와 마지막 이별도 제대로 하지를 못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추운 겨울이었다. 언 발을 녹이고 밤을 지새워가며 아버지와 영원한 이별을 했다지만 아직도 내게는 이별이 현실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세상을 떠난 사람과의 이별은 그 사람이 남긴 삶의 그림자를 마지막으로 잊어버리는 때다. 내게는 아버지와 조카의 그림자가 환영처럼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어 아직은 영원한 이별을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겨울에 거칠게 불어오는 삭풍도 여름날의 파도를 삼킬 것 같은 광풍도 내 기억의 그림자는 빼앗아 갈 수 없다.


종종 이별 아닌 이별에 목숨을 가벼이 여겨 세상을 원망하며 떠나는 사람을 보게 된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다 해도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생명에는 다음 세대에게 다리를 이어야 하는 막중한 의무감이 들어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사이에는 영원이라는 공간이 자리한다. 그 공간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것이 영혼의 소통이다. 죽음은 죽는 것이 아니라 잠시 영혼의 안식처에서 머무르는 것이다. 그곳에서 불멸이니 윤회니 하는 재탄생의 단어가 태어난다.

슬픔과 고통을 안고 고독한 광야를 향해 떠나간 조카의 눈동자. 생전에 잠시 나와 마주친 슬픈 눈망울이 오늘따라 더욱 보고 싶다. 삶의 성숙은 내가 가까이 지내던 익숙한 얼굴과의 결별이 가져다준 상처의 흔적이 아닐까. 올해 겨울은 다른 해보다 유난히 춥고 쓸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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