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찾아간 고향. 고향 집의 초라한 모습처럼 어머니의 육신도 날이 갈수록 야위어만 간다. 삶의 고단함에 애잔한 어깨에는 쓸쓸함과 진득한 외로움만 덕지덕지 묻어난다.
고향을 지키는 느티나무 우둠지는 고사된 지 오래고, 고독이 자라는 껍질에는 짙은 고향의 냄새만 짙어간다. 그리움과 희망을 실어 오던 바람과 꿈을 싣고 산등성을 넘어가던 구름은 어디로 간 것일까.
무정에서 유정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무정한 고향. 잠시 머물렀다 떠나가는 정거장 같은 고향이라지만 나를 키워주던 고향의 냄새는 점점 사라져 가고 산자락과 들녘만이 외롭게 자리를 지킨다.
강물이 무심하게 흐르며 불규칙한 물줄기를 낳듯이 고향도 흐르는 세월에 하나둘씩 스러지며 근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산자락과 논두렁과 밭이랑을 타고 넘으며 울고 웃던 사람들은 보이 지를 않고, 반겨주는 것이라곤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과 덤불숲에서 들려오는 텃새의 지저귐이다.
마을을 어슬렁거리며 대나무처럼 꼿꼿했던 중년의 사람들은 어느새 등이 굽어 어깨너머로 둥근달이 떠오른다. 그런 마을의 풍경을 뒤로한 채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만이 거칠게 옷자락을 잡아채며 어딘가로 이끈다.
내가 이곳에서 태어난 것이 언제이던가. 아무리 그날을 기억하려 해도 시간은 앞으로만 내달릴 뿐 돌아서지 않는다. 눈은 현실의 그림자를 찾기 위해 빛을 발하고, 마음은 옛 시절에 묻어둔 그림자를 밟아 보려고 허둥지둥거린다.
무엇이 그립고 애가 타서 다시 이곳을 찾아왔을까. 나를 반겨 주는 것도 반기는 이도 별로 없는 곳을. 유정의 공간은 점점 사라지고 무정만이 성장하는 황량한 곳.
사람을 살갑게 맞아 주던 따스한 온기는 엷어지고 산기슭에서 불어오는 냉랭한 바람이 맞아준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게 변해도 고향은 유정이 충만한 세상으로 남아있기를 고대했건만.
고향도 세월의 비탈길을 향해 속절없이 미끄러져만 간다. 어머니의 야위어 가는 연약한 몸. 그 몸으로 누구를 낳고 누구를 기른 것인가. 모진 세월만이 어머니를 스쳐가며 초췌한 흠집과 한을 남기며 상처를 키웠다.
고향의 선산에는 내 낳을 적 푸른 소나무가 아직도 정정하건만. 나는 왜 이리도 무정한 세상에 나와서 고독하게 타관 땅을 떠돌까. 고향을 밟으며 느끼는 것은 생경함이다.
어머니는 허드렛일로 연신 허리가 아프다 다리가 아프다는 푸념을 토해내신다. 한시라도 일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의 한. 이제는 자식들 뒷전에 물러나 바라만 봐도 될 것을. 손수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일이란 하면 할수록 늘어나고, 손에서 놓으면 놓을수록 빈손이 되어가는 것이 삶의 이치이거늘. 손에 잠시라도 무언가를 잡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애달픈 삶.
마을을 가로지르는 시냇물은 졸졸거리며 방향을 잃은 채 흘러가고. 바람에 쓰러질 듯한 고목의 거친 울음소리와 부모를 따라와 조잘거리는 어린아이의 유정한 목소리.
모처럼 고향에서 유정한 소리를 듣건만 며칠도 머무르지 못하고 사라진다. 유정이 가득하던 고향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곳을 찾아왔지만, 모두가 무정으로 변해만 가는 낯선 만남의 연속이다.
산에서 마을로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마을에서 산으로 불어 가는 사람의 한숨 소리. 고향은 사람을 품에 안고자 하나 사람은 고향을 등지려고만 한다. 고향을 등지려면 그만한 기울기로 다른 것을 끌어안아야 하는 것이 삶의 이치다.
고향은 등진다고 버려지지도 않고, 끌어안는다고 안아지지도 않는다. 고향은 등지고 안는 것을 함께 취할 때 유정한 곳이 된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정에서 한없이 멀어져만 가는 무정한 고향. 병풍처럼 둘러싼 산자락이 나를 유혹한다지만 무정을 향해 불어 가는 바람은 어쩌지를 못한다.
고향이 맑은 유리성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은 나만의 욕심일까? 유정한 모습은 사라져 가고 그나마 무정한 모습을 만나는 것에 만족해야 하나.
산 사람은 도시의 가로등 불빛을 찾아 고향을 떠나고, 이승을 떠난 사람은 고향의 달빛이 그리워 찾아오는 무정한 고향. 번성했던 시절의 삶은 산자락에서 만나고, 고독의 잔을 기울이는 쓸쓸한 정경은 초라한 마을에서 만난다.
지난 시절 발자국과 흔적을 찾을수록 멀리 달아나 버리는 곳. 무정한 바람을 타고 타관을 떠돌면서 고향의 풀냄새를 잃어가는 유목민 같은 고단한 삶.
고향을 떠나지 않고 묵묵히 지키는 사람이 왜 그리 반가운지.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내가 세상에 함께 존재해서다. 고향의 옛 터전은 그런 만남과 고독과 삶의 이유를 진실하게 가르쳐 준다.
비록 유정에서 무정으로 변해가는 고향이라지만 무정한 공간에서 유정한 세상을 그리는 것은 지난 시절의 꿈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고향은 무정하게 변해가지만, 머릿속에는 유정의 샘물이 뭉글뭉글 솟아오른다. 고향의 동구에는 누런 흙이 세월에 견디지 못하고 속살의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리고 엿가락 같던 오솔길은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검은 포도에 짓눌려 옛것으로 되돌려 달라며 몸부림을 친다.
고향을 지키던 젊고 굵은 목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고, 삶에 지친 등 굽은 사람의 밭은 숨소리는 높아만 간다.
이곳이 차마 잊을 수 없는 고향이던가. 고향에 한 줌의 유정한 흙이라도 뿌려주고 싶은 이 마음. 아버지가 그리워도 만날 수 없고, 지나간 시절을 만나고 싶어도 휑하니 사라진 차가운 들녘. 저 멀리 산등성을 타고 넘어가는 구름을 향해 마음을 전해 보지만 말이 없다.
앞산에서 쪼르륵 날아온 텃새는 고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을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나뭇잎을 뒤척이며 산으로 불어 가는 거친 바람뿐이다.
유정이 사라져 가는 무정한 고향이라지만 찾아오는 횟수보다 마음의 위안을 받는 곳이 고향이다. 그런 고향을 찾아올 수 있어 좋고 끌어안을 고향이나마 있는 것에 그저 감사드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