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수정)

by 이상역

강동에세이클럽 회원들이 첫가을 문학기행에 나섰다. 남양주 정약용 생가와 양평의 세미원과 황순원 문학관을 찾아가 문학인의 발자취를 체험하는 것이다.


남양주 정약용 생가에 도착해서 다산박물관에 들어서자 장약용이 하피첩에 새긴 '매화병제도'란 시가 눈에 들어왔다.


사뿐사뿐 새가 날아와

우리 뜨락 매화나무 가지에 앉아 쉬네

매화꽃 향내 짙게 풍기자 꽃향기 그리워 날아왔네

이제부터 여기에 머물러 지내며

가정 이루고 즐겁게 살거라

꽃도 이제 활짝 피었으니 열매도 주렁주렁 맺으리(정약용, '매화병제도')


이 시는 정약용이 시집간 딸을 위해 시제와 함께 하얗게 핀 매화가지 위에 두 마리의 새가 앉아 한 곳을 바라보게 그린 것이다. 한 곳을 바라보는 두 마리 새처럼 다복한 가정을 꾸미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 집안이 번창하기를 기원한 것이다.


이 시의 행간에는 정약용의 마음도 들어 있다. 새가 뜨락의 매화나무 향기가 그리워 날아와서 쉰다고 한 것은 자신도 유배에서 풀려나 가정을 이루고 새처럼 편히 쉬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다.


정약용은 실학의 대가로 많은 저서를 남겼다. 유배 생활 중에 아내가 혼인할 때 입었던 활옷을 보내자 시집간 딸을 위해 활옷에 그림을 그린 하피첩이 유명하고, 아들에게 "독서야말로 우리 인간이 해야 할 본분"이라며 늘 책을 가까이하라고 가르쳤다.


조선 최고의 대학자로 살다 간 정약용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정약용 생가를 돌아보니 주변이 아늑하고 고요해서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고 살기 좋아 보였다.


정약용은 유배가 결정되자 "이제야 겨를을 얻었구나"라며 생을 좌절하지 않고 역경을 기회로 삼아 학문에 힘써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일행과 다산박물관, 정약용 동상과 생가, 실학박물관을 돌아보며 정약용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양평 양수리 세미원은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연꽃을 바라보고 마음을 깨우치라는 곳이다.


양수리는 두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부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서 안개가 자주 끼고 늪지대가 생겨 사람이 거주하기 좋은 곳이다.


세미원 입구에서 표를 끊고 입장해서 불이문을 지나 장독대 분수 정원에 이르자 문태준 시인의 시비가 일행을 반긴다.


오늘은 당신에게 미루어놓은 말이 있어

길을 가다 우연히 갈대숲 사이

개개비의 둥지를 보았네

그대여, 나의 못다 한 말은

이 외곽의 둥지처럼

천둥과 바람과 눈보라를 홀로 맞고 있으리

(중간생략)

(민태준, '당신에게 미루어 놓은 말이 있어')


세미원 습지 정원을 거닐며 민태준 시인의 시를 읊조려 보니 가슴에 연꽃 같은 정서와 시어가 들어찬다. 시를 읽어보면 시인의 여린 가슴과 가슴 시린 가냘픈 마음이 잔잔하게 느껴진다.


문태준 시인이 양수리 세미원과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시인의 시어가 세미원을 날아다니듯이 연꽃 정원을 아름답고 예쁘게 조성해 놓았다.


연꽃이 져서 꽃을 볼 수 없는 서운함은 들었지만 일행과 세미원을 거닐며 사진도 찍고 연꽃언덕에 가서 연꽃정식으로 점심을 먹으니 배가 부른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한없이 배부르다.


세미원은 문태준 시인의 아름다운 시어와 강물을 정화시키는 연꽃과 가슴을 부풀리는 연꽃정식에 취해 연꽃처럼 맑은 꿈을 꾸며 거닐었다.


양평 서종의 소나기 마을에 차를 주차하고 황순원 문학관 언덕으로 올라가는데 학창 시절 '소나기'를 배우던 수업시간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개울물은 날로 여물어 갔다. 소년은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가 보았다. 갈밭머리에서 바라보는 서당골 마을은 쪽빛 하늘 아래 한결 가까워 보였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황순원, '소나기'에서)"


황순원 문학관 언덕길은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처럼 다가왔다. 황순원 작가가 어서 오라는 듯 황순원 문학제가 열리고 있었다.


마침 황순원 문학관에서 시상식이 열린다고 한다. 소나기 마을과 문학관 앞뜰에 차가 많이 주차되어 있다. 문학관은 수상과 수상 축하를 위해 참석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문학관에서 작가의 원고와 펜과 작품 등을 보면서 작가의 치열한 정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이백 번 수정했다는 글을 읽으며 문학은 천재성이 아니라 수많은 다듬기로 이루어진다는 것도 배웠다.


말이 이백 번이지 글에 미치치 않고는 하기 힘든 작업이다. 한 작품을 서너 번 다듬기도 어려운데 이백 번을 수정한다는 것은 자신을 철저한 벽에 가두고 학대하지 않고는 할 수가 없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범점 할 수 없는 영역이고 함부로 들어설 수 없는 길인 것 같다. 황순원 작가는 북한에서 태어나 남한에 문학관을 설립할 때 마땅한 곳이 없었다고 한다.


'소나기'에서 양평을 언급한 것이 인연이 되어 양평에 문학관을 설립했다. 소나기 마을과 황순원 문학관을 돌아보는데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소나기'를 읽어주며 가르치던 낭랑한 목소리가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때는 황순원이 어떤 사람인지 문학에 어떤 족적을 남긴 분인지 알지 못했는데 문학관을 돌아보고 대단한 사람이란 것을 알았다.


문학기행은 문학을 현지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기록하는 여행이다. 이번 문학기행은 문학인의 발자취를 보고 듣고 돌아본 것을 넘어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고 온 것 같다.


남양주 다산 생가는 문학의 보고가 아니라 역사의 산실이다. 그리고 소나기 마을과 문학관은 정서와 서정이 서로 어울리지 않고 좀 낯설게 느껴졌다. 어딘지 허전하고 무언가 부족한 듯해서 아쉬웠다.


황순원 문학관이 소나기 마을에 가려져 주와 객이 바뀐 것처럼 다가왔다. 문학관이 소나기 마을보다 주관적으로 다가오도록 부각시키고 소나기 마을은 객으로 자리 잡게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멋진 도꼭지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