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열매는 어디서 왔나

by 이상역

사람은 가끔 자신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하여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근원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신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과 인류가 등장하고 마지막에는 인간의 창조론과 진화론까지 대두한다. 근원의 탐색은 자신의 존재방식과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이냐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다.


동물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 물론 동물이나 사물은 이성이 없어 스스로 물어볼 수는 없지만 그냥 지나치지 말고 그것 어디서 오고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에는 사물과 동물이 함께 존재한다. 그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그리고 왜 존재하는지 보다 근원적인 것을 생각하며 삶을 누릴 때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와 깊이가 달라진다.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에게 "넌 어디서 왔니!"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아직은 말을 못 하니 질문을 해본들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할 것이다.


요즈음 두 돌이 된 손주의 낮잠을 재우러 가는 것이 일과가 되어 간다. 손주의 낮잠을 재우려면 먼저 밖에 나가 한 시간 정도 걷거나 뛰어놀 집에 와서 끼니를 먹이고 재우면 잘 잔다.


손주의 낮잠을 재우러 밖에 나가 서성이면 손주가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그중에 하나가 "은행 어디 있어!"라는 물음이다.


손주가 질문하면 가로수나 단지에 심은 은행나무를 가리키며 은행도 암나무와 수나무가 있는데 은행은 암나무에만 달려서 은행 열매는 암나무 밑에 가야 볼 수 있다고 설명해 준다.


그렇게 손주에게 몇 번 설명을 했더니 할머니와 집에 있을 때 베란다 밖을 바라보며 손주가 "은행 열매 어디 있어"라고 묻더란다. 그리고는 자기가 "은행 열매는 암나무에서만 열리고 수나무에서는 안 열린다. 집 앞 은행나무는 수나무라서 은행 열매가 없다"라고 할머니에게 설명하더란다.


손주가 말한 것은 은행나무의 암수를 구별하고 은행은 암나무 밑에 가면 볼 수 있다는 인식이다. 다른 나무와 은행나무를 그리고 은행나무 암수를 구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손주가 사는 집 아파트 단지나 근처 공원에 갈 때마다 나뭇잎과 꽃잎과 나무의 씨앗을 따서 만져보게 하거나 나무의 구별법과 열매가 익어가는 과정을 손주에게 말해준다.


손주가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자기가 생각해서 말 한다는 것은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아기가 성장하는 모습은 바라볼수록 놀라움과 신비로움과 사물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아파트 단지와 공원에서 자라는 나무와 꽃 이름을 말하는 것이 그저 귀엽다.


손주가 "은행 열매 어디 있어", "무슨 나무야"라고 묻는 것은 사물의 근원을 밝혀 달라는 말이다. 아이에게 은행 열매가 어디 있고 나무 이름을 알려주는 것은 나중에 커서 그 근원을 찾아보라는 출발점이다.


나무와 꽃 이름을 말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름 너머에 존재하는 근원을 말해서 밝혀 주는 것이 더 중요하고 삶의 철학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터주고 안내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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