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영하로 떨어지고 추운 바람이 불어대니 몸이 잔뜩 움츠러드는 계절이다. 시내에 점심 약속이 있어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중이다.
아침에 구봉산을 올라가는데 등산길에 떨어진 낙엽이 바짝 말라서 바람에 몸을 일렁이며 바스락대는 소리를 낸다. 낙엽이 바스락대는 것은 생을 마치고 자연으로 회귀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구봉산에 들어서기 전 아파트 골목길의 구석에도 산에서 물처럼 밀려 내려온 마른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나는 수북이 쌓인 낙엽만 보면 발로 밟거나 손에 들고 가는 지팡이로 낙엽더미를 쿡쿡 찌르며 지나간다.
낙엽이 생을 마치고 자연으로 돌아가려면 자신의 몸을 가루로 만들어야 한다. 몸을 가루로 분해하지 못하면 자연이 받아주지 않는다.
낙엽은 이래저래 사람에 밟히고 바람에 뒹굴면서 자신을 분해시켜야 한다. 겨울철에 추운 바람이 부는 것은 자연의 냉혹함을 견뎌보라는 시련의 메시지다.
전철을 타고 가는 사람들의 옷이 두꺼워졌다. 겨울의 추위를 견디고 몸에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옷을 둘둘 말아 입은 것처럼 눈에 들어온다.
겨울이 되면 사람은 몸을 따뜻하게 보호하기 위해 옷을 두껍게 입고, 나무는 겨울의 찬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봄부터 키워온 나뭇잎을 훌훌 벗어버린다.
지하의 어두운 터널을 빠르게 달려가는 전철을 타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제각각이다. 눈을 감고 잠을 자는 사람, 고개를 떨구고 휴대폰 보는 사람, 가만히 정면을 응시하는 사람, 아무 말없이 서 있는 사람 등.
낙엽이 분해되어 땅으로 돌아가듯이 사람 또한 낙엽처럼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주기만 다를 뿐 낙엽이나 사람이나 같은 신세다.
나무는 태어난 자리에서 한 세상 그 자리를 지키다 사라지지만 사람은 태어난 자리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이다 사라진다.
점심 약속한 곳을 가기 위해서는 전철에서 내려야 한다. 전철은 초 단위로 움직여서 약속을 지키는데 수월하다. 세상이 편리해진 것만큼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도 닮아가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아침에 등산을 마치고 초등학교를 지나올 때마다 자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서서 자녀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부모에게 자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근심과 걱정과 희망과 욕망을 품게 하는 연약한 생명체다. 낙엽은 나무로 돌아가기 위해 오랜 시간 방황과 고독한 시간을 보낸다. 자식도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성장과 고통을 겪으며 고독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자연의 회귀는 본래 온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나무나 사람이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은 같다. 단지 그것을 알고 있느냐 모르느냐 차이만 다를 뿐이다.
서울 시내에서 사람을 만나 일을 마치면 내가 왔던 자리로 전철을 타고 다시 돌아가야 한다. 아마도 그런 되풀이는 연약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의미 없이 반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