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에서

by 이상역

반추(反芻)는 소나 염소 등이 한번 삼킨 음식을 위에 저장해 두었다가 다시 꺼내어 씹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지나간 일을 되풀이하여 기억하고 음미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반추는 되새김질을 뜻하는 말이지만 대개 지난 일을 다시 떠올리며 그 의미를 깊이 되새기는 것을 비유할 때 사용한다. 단순히 떠올리는 것이 기억이라면 반추는 그 기억 속에 담긴 의미를 곱씹으며 생각하는 점에 차이가 있다.


책상에 놓인 탁상 달력을 바라보니 한 해를 마무리할 때다.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니 내 가정에 많은 사연과 일들이 일어났거나 사라졌다.


지난 한 해를 반추해 보니 그나마 잘한 것은 아침마다 가벼운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한 것이고, 두 번째는 딸네 집에 가서 손주를 돌봐준 일이다. 그리고 막내 결혼 준비와 몇 편의 글을 써서 브런치에 올리고 출판사에 법 해설집을 맡긴 일이다,


아울러 아쉬운 것은 겨울부터 몸이 게을러지면서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한 것이고, 그다음은 용돈 벌이를 구하지 못하고 무료하게 시간을 보낸 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하는 일에 대한 책임과 의무감이 점점 줄어든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 다니며 강건했던 원칙과 책임감에 대한 인식이 점점 흐려지고 무뎌져만 간다. 하기사 지금은 무언가에 대한 계획을 세워 일을 하려 해도 의무감이 아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 대부분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몸을 보호하기 위한 운동이 제일 중요한 일과가 되어간다. 물론 자식이 결혼하거나 집을 마련해서 입주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은 내 일이 아닌 자식의 일이 되다 보니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바라보는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한 해의 끝자락인 오늘이 가고 내일부터는 새로운 해가 시작된다. 한 해가 끝나는 것은 새로운 해가 열리는 시작이자 출발점이다. 어떤 일이든 마무리는 매듭을 짓고 가야 한다.


지나간 해의 마무리는 매듭을 짓는 일이고, 새로운 해의 시작은 새로운 매듭을 엮는 일이다. 매듭을 짓고 엮는 것은 같은 의미로 생각되지만 전혀 다른 일이다.


사람은 오고 가는 것이 분명해야 하듯이 매듭을 짓고 새롭게 엮는 일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지난 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언제나 후회하는 마음과 생각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과거를 바라보며 조금만 더 노력할걸 조금만 더 잘할걸 하는 아쉬운 마음과 미안한 생각으로 가득 찬다. 내년에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도록 새해가 되면 마음을 다지지만 생각뿐이다.


아침에 구봉산에 올라가 언덕에서 가볍게 체조를 하는데 동쪽 하늘에서 떠오르는 태양으로 인해 하늘이 벌겋게 수를 놓았다. 일출과 일몰이 지는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경건한 마음이 깃든다.


구봉산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산을 올라오는 아저씨가 "할렐루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며 인사를 건넨다. 얼굴도 모르는 분이 인사해서 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낯선 사람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들으니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지고 새해에는 정말로 복을 많이 받는 사람이 될 것만 같다.


잘 아는 사람이 건네는 말보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건네는 말이 더 큰 울림을 준다. 오늘이란 명사가 가고 내일이란 병오년 새해가 다가오면 내 가정에는 커다란 일이 기다린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막내의 결혼식이다. 막내가 결혼하면 두 딸 모두가 가정을 이루어 출가하게 된다. 어느 가정이나 가정에서 가장 큰 일은 자녀의 결혼이다. 결혼은 부모로부터 독립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것이다.


막내 결혼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소원하고 개인적으로나 가정에서 이루지 못한 것은 내년에 성취하게 되기를 바라며 내년에도 올해처럼 아침 운동 열심히 하고 하고자 하는 일이 모두 무사히 달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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