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귀

by 이상역

어귀는 드나드는 목의 첫머리를 뜻한다. 유사한 말로 길목이나 동구나 들머리란 말이 있다. 동네 어귀는 동네를 드나드는 첫머리다. 동네 어귀란 말 대신 마을 어귀로도 불린다.


어느 동네나 어귀에 들어서면 동네가 펼쳐진다. 동네 뒤로는 산자락이 감싸고 골목길이 드러나고 시냇물 소리나 개 짖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어귀에 서 있는 느티나무와 동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다.


시골에서 살던 시절 동네 밖에 나갔다가 어귀에 들어서면 늘 보던 풍경이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 살게 되면서 동네란 말도 마을이란 말도 점점 잊고 지냈다.


도시에 살면서 안타까운 것은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들려오던 개 짖는 소리나 닭 우는 소리 그리고 하늘을 향해 우뚝 선 느티나무나 시냇물이 흘러가는 서정적인 향수를 잊게 된 것이다.


시골에서 자랄 때는 고향 집이 동네 어귀에 있어 동네를 들고나는 사람을 보면서 성장했다. 동네에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를 바라보며 사는 것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흥미롭고 재미가 있었다.


계절마다 사람들이 찾아오고 무리를 지어 동네 어귀를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늘이 장날이고 누가 결혼하고 어느 집 어른이 회갑을 맞이했는지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런 풍경과 정취를 보며 자라다 도시로 나와 살게 되면서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가는 모습도 동네로 들어오는 모습도 바라볼 수가 없다. 지나가는 사람 대신 이삿짐차가 들어오는 것을 자주 보았다.


동네 어귀에는 그 동네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풍경과 정취와 사연이 깃들기 마련이다. 동네 어귀에 주막집이 있거나 버스 정류장이 있거나 언덕이 있거나 동네 어귀마다 배어 있는 풍경과 정취는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자란 동네 어귀에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시냇가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자라고 약간 비탈진 길과 오래된 비석이 서 있고 마을 사람이 죽으면 상여를 꾸리는 상여 집이 서 있다.


동네 어귀는 사람의 가슴에 들어찬 풍경이자 가슴에 깃든 서정이다. 지금도 내 가슴에는 그 풍경과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나를 지켜주고 흔들리는 마음을 세워준다.


고향에서 자주 보던 동네 어귀 정취는 도시에서는 마주할 수 없는 풍경이다. 도시는 시골의 정취와 풍경을 따라갈 수 없고 만들어질 수도 없다. 도시와 시골의 태생적 한계이자 서정성의 차이다.


지금도 옛 시절 동네 어귀에서 만난 사연과 풍경이 내 가슴에 고요히 깃들어 있다. 그 사연과 정취는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간직하고 살아가야 할 디딤돌이다.


오늘처럼 날씨가 흐린 날 동네 어귀에 도깨비불이 보인다고 수런거리던 동네 사람들의 목서리가 귓전에 들려오는 듯하다. 도깨비불이 동네 어귀를 날아다니며 배회하는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이가 들고 보니 동네 어귀가 그리워진다. 고향을 찾아가면 만나는 풍경이지만 그곳을 배회하는 꿈을 꾸고 신록이 성장하는 계절이면 또렷이 떠오른다.


정지용의 "향수"처럼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고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정겨운 동네 어귀.


아버지가 봄철에 소를 앞세우고 아랫마을로 쟁기를 얹은 지게를 지고 비탈진 동네 어귀를 내려가는 곳.

동네 어귀에서 개구쟁이 친구들과 가재와 개구리를 잡으러 쏘다녔던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오늘은 다른 생각은 접어두고 오롯이 동네 어귀를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그리운 옛 노래나 부르고 고향을 떠나 타관을 떠도는 동네 사람을 떠올리며 추억에나 젖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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