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글쓰기
"집"
집이라는 단어는 아주 익숙한 그냥 한 글자에 지나지 않는 단어이다.
집이라는 단어는 떠올리면 아주 당연해서 그냥 흘려버리는 단어이다.
그런데 지금
"집"
집
단 하나의 단어로 써 놓고 보니 그 단어가 낯설다.
나의 생각 속 집은 가족, 편안함 그리고 부의 상징이다.
결혼하기 전 나에게 집이란 나의 소속이라기보다 가족이 함께 하는 곳, 그 가정 안에서 나를 편안하게 쉬게 해주는 곳, 부모님께 기댈 수 있는 곳, 지친 나의 일상을 덜어 놓고 쉴 수 있는 곳, 마음이 쉬는 곳이었다.
결혼 후 "나의 집"이 생겼고 처음 갖는 나의 집은 낯선 동거인과 함께 하는 소꿉장난 같은 놀이터 같았다. 처음 가진 나의 집은 나에게 책임을 주었고, 할 일을 주었고, 새 가족을 주었다.
더없이 소중한 나의 아이가 태어난 곳이고, 그 아이를 통해 그 작은 나의 집은 나를 엄마로 성장시키고, 결혼 전 알지 못했던 존재의 신비와 기쁨과 감사와 더불어 인내와 참음과 다양한 경험들로 채워졌다.
나의 집은 나에게 가족과 책임을 주었다.
결혼 전 부모님의 집은 마냥 편한 공간이었다면, 결혼 후 나의 집은 늘 나에게 해야 할 일들을 주었다.
그래서 집은 나에게 편안한 공간이면서도 아주 불편한 공간이 되었다.
"나의 집"은 내가 아내이기를, 엄마이기를, 청소부이기를, 시중이 되기를, 여자이기를, 교사이기를, 경제학자이기를, 재테크 전문가이기를, 능력 있는 사람이기를, 신이 기를, 쉬지 않고 일하기를 재촉했다.
그래서 "나의 집"이 생기고 나서는 그 집을 나가고 싶어졌다. 아이들 육아에 지친 그날 생활에 지친 그날 밤 나의 집은 문이 있으나 나갈 수 없는 감옥이었고, 열 수 있으나 열리지 않는 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문을 열지 못해 집의 벽에 대고 머리를 박았다. 쿵 쿵 쿵...
집이 못 나가게 한 건 아니지만 "나의 집" 이기에 내가 책임져야 할 모든 것이 있는 그곳이기에 문을 열고 싶지만 열지 못하는 그런 집이었다.
가족이 모두 나가고 난 시간 "나의 집"에 혼자 남겨져있을 때면 집은 나에게 편안함과 함께 책임이라는 단어를 무장해 남겨진 일들을 하라고 재촉한다. 그래서 집은 짧은 편안함과 많은 일거리를 주는 공간이 된다.
모든 걸 내려놓고 정말 쉬고 싶은 날에는 그래서 "나의 집"을 나온다.
나의 집이 아닌 타인의 집, 카페, 쉼터, 혼자만 쉴 수 있는 펜션 같은 남의 집에 간다.
40대가 되고 나서는 나의 집은 부의 상징이 되었다.
꼭 갖고 싶은 것, 더 갖고 싶은 것,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한 것
"곳"이 아니라
"것"이 되었다.
재테크, 부, 욕심, 재력, 경제... 이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던 이전의 나는 집은 집일뿐
사람이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면 되고, 가족이 함께 어울렁 더울렁 어울려 놀고, 하하 호호 웃음소리 나고
슬플 땐 엉엉 울고, 화날 땐 투덜거리기도 하고, 위로도 받고, 엥엥 울던 아기 "엄마" 소리 내고, 걷고, 뛰고, 반항하고, 아이의 변화에 기뻐하기도 속상해하기도 하며 가족들이 투닥투닥 살아내는 공간일 뿐이라 여겼다.
그런데 40대가 되고 나서는, 내가 부에 관심이 생기고 나서는 집은 "부의 상징"이 되었다.
내 소유의 집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조금 더 욕심내지 않고 그 집을 더 갖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만들어 냈고, 또 다른 집을 소유하고 싶은 욕심을 만들어 내는 것이 되었다.
몇 평에 사는지, 어디에 사는지, 집의 가격은 얼마인지, 내가 사는 집 이외에 또 내 소유의 집은 몇 개인지 등이 부의 상징이 되었다.
가족이 태어나는 곳, 한 사람이 완성되는 곳, 가족이 쉴 수 있는 곳, 나를 충전할 수 있는 곳
시초에는 가족을 보호해 주는 공간의 역할이었던 집은 현재는 부의 상징이 되었다.
집은 안과 밖이 다르다.
그 안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온전히 받아주는 곳이고, 채워지고 완성되는 차별 없는 곳이다.
그 밖에서는 나를 나타내는 것, 뽐내는 것, 경제와 부를 상징하는 것, 차별이 존재하는 것이다.
집의 안과 밖은 다르다. 우리의 마음과 겉모습이 다르듯...
집은 "곳"일 때 행복한 공간이고, "것"일 때는 불편하게도 한다.
그래도 집은 집이고, 나는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