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글쓰기
2011년 서울 지하철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무표정하게 핸드폰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는 풍경이 나에게 작은 충격이었다.
삼 년쯤 지나 대전에 와서 지하철을 탔다.
대전의 지하철 안에도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핸드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물론 나 또한 그 사람들 중 하나였다.
신혼시절 남편은 카페에 가서 앞에 나를 앉혀 놓고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행동을 자주 했다.
그러면 맞은편 앉아있던 나는 무시당하는 기분과 사람과 함께 앉아 기계만 보고 있는 상대가 무례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남편에게 "뭐 하는 거야? 사람 앞에 앉혀놓고 핸드폰만 보고, 나는 뭐야? 무시하는 것 같잖아."
"미안, 핸드폰 안 볼게."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남편, 나, 아이 둘 모두 핸드폰에 고개를 박고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곤 한다.
이 풍경이 자연스러워졌다.
집에서조차 한 거실 안에 핸드폰, 노트북 각자의 미디어 세상 속에 빠져있다.
함께 있어도 함께 있지 않은 상태
길거리에 핸드폰에 눈을 박고 걷는 어른들이 있다.
이제 아이들도 하교 후 핸드폰에 고개를 박고 학원으로 향한다.
학원차량 탑승 정류장에는 핸드폰에 고개를 박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길거리 이제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사이에 두고 부부가 걸어간다.
엄마는 아이 손을 잡고, 아빠는 한 손은 아이를, 한 손은 핸드폰을 잡고 몸을 숙여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눈앞에 핸드폰을 대주며 걷고 있다.
이 풍경을 보자니 이 세상에 사람이 살고 있는 건지 핸드폰 좀비들이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장아장 말도 못 하는 아이가 핸드폰을 태어나자마자 달라고 울었을 리 없고,
핸드폰 보고 싶다 말했을 리 없는데 아이의 눈앞에 그것도 걷고 있는 아이에게 아주 자상하게 핸드폰을 대주고 있는 모습이 몹시도 씁쓸하다.
유치원 교사로 일하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코로나 이전만 하더라도 동화 듣는 시간이었다.
떠들고 장난치다가도 제자리 앉아 혹은 장난치던 녀석도 슬그머니 와서 듣던 게 동화였다.
그래서 아주 기분 좋게 동화를 읽어줄 수 있었다.
코로나 이후 만난 아이들은 동화 따위에는 집중하지 않는다.
"선생님, 시시해요."
여섯 살 아이에게 흘러나온 말에 여러가지 감정이 솟았다. 정말 시시해서가 아닌 미디어가 판을 치는 이 세상 짧은 영상들이 자극적으로 넘쳐나는 세상에 태어나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핸드폰 영상에 자연스레 노출되는 아이들에게 이런 반응은 당연하다.
그리고 씁쓸했다. 동화 속에 살아야 할 녀석들이 영상에 쉽게 노출되고 있으니... 그들의 창의력도 생각도 모두 쥐어 짜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뛰어놀고 부딪히고, 느끼며 배워야 할 것들을 잃은 지금의 아이들이 불쌍했다.
어른들아 정신 차리자.
응애도 못하는 애들이 핸드폰 안 준다고 울지는 않는다.
"핸드폰 안 주면 밥 안 먹을 거야." 는 경험에서 나온다.
정신 차리자.제발 정신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