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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근한 수록 Mar 22. 2022

우리는 0으로 향한다.

그렇게 결국 우리는 0에서 만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내 기대여명은 73세이지만, 2020년 출생자 기준 기대여명은 83세.

27년 새에 10년의 수명이 늘었다.

3년마다 1년씩 더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나온 셈이다.

지표로 놓고 보니 세상을 먼저 만난 대가로 몇 년의 손해를 본 것 같아 억울한 마음이 불쑥 찾아왔다.



그렇지만 삶은 늘 공평하다.

우리가 낡기 시작하는 나이를 보라.



여명이 다하는 날이 점점 길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성장은 20세면 멈춘다.

전자는 풍요와 의학의 발달 덕분이라면, 후자는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서히 성장해 그래프의 맨 꼭대기에 다다르고, 그 순간부터 추락은 시작된다. 그렇게 끝없는 하향을 전전하다 그래프의 값이 0을 가리키는 날 비로소 개인의 일생은 끝난다.


비록 완만한 추락을 위해 우리는 천천히 낡는 법을 연구하고 있지만, '멈추지 않는 한 낡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낡아간다는 건 살아있다는 걸 반증한다. 개인이 낡음을 받아들이든지 말든지 우리는 0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낡아가야 한다.



0에서 시작해서 0으로 마치는 우리의 일생.

0에서 오를 수 있는 건 최대 1이다.

1에서 내려갈 수 있는 건 최대 0이다.

0은 일생에 두 번.

태어날 때와 죽음이 찾아올 때뿐이며,

1은 일생에 한 번. 세포가 최대 성장을 마치는 찰나뿐이다.



속도가 다르지 않냐고?

맞다. 물론 0으로 향하는 과정은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1 언저리에서 오래 머무르다가 0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1을 맛보기 전에 0을 만나기도 한다.

게다가 0 근처에서 바둥거리며 삶의 끄트머리를 놓지 못할 때도 있다.



속도는 다르지만, 그렇대도 우리는 모두 0으로 향한다.

결국 우리는 0에서 만난다.

모두 떨어지는 신세다.



0이 나의 마지막임이 확실하기에 그래프를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며 내가 어디쯤 가 있나 살펴보는 건 쓸데없는 짓이다. 다만 내가 어떻게 낡아가야 할 지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한다.



결국 천천히 쇠퇴하는 세포 덩어리를 데리고, 나는 어떤 미래를 그리며 살아야 하는?

그리고 그대.

그대는 어떻게 낡아가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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