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소중했던 것들을 잃었던 순간, 기대했던 시험에서 낙방했던 순간, 염원하던 일을 떠나보내야 했던 순간, 멀어지는 인연을 바라봐야만 하는 순간.
나는 일련의 상실을 겪으며, 패배자의 기분에 흠뻑 젖어들었다.
그렇게 모든 상실은 상실로 끝나는 줄 알았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어재끼기.
텅 빈 마음 부여잡고 헛헛해하기.
잃어버린 존재에 대한 아쉬움을 박박 긁어모으기.
동공에 힘 풀고 살면서 인생이 어떻게 흐르던지 방관하기.
미래는 절망으로 가득 채워버리기.
밥도 굶고, 잠도 안 자고, 웃지도 않기.
상실 직후 나는 한동안 모든 것을 멈췄다. 삶이 피폐해지기를 원치 않았지만, 나약한 마음은 매번 지고 말았다. 상실에서 오는 고통은 꽤나 강력했다. 그래서 상실은 더 큰 상실로 번졌다. 실로 제1의 상실이 찾아오면 대장 격의 슬픔이 앞장서서 제2의, 제3의... n차의 상실들을 부차로 만들었기에.
그래서 나는 잃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어떤 것도 놓칠 수 없었다.
내 인생에 더 힘을 꽉 주고, 어떤 것도 잃지 않으려 버둥거렸다.
하지만 힘주고 살던 내 꼴이 우습게도-그리고 놀랍게도- 상실은 어느새 새로운 채움으로 다가왔다. 한 발 떨어져서 내 삶을 관조해보니 정말 그랬다.
상실은 내게 단단함을 가져왔다. 한 뼘의 성장을 가져왔고, 자유로울 용기를 건넸다.
근육의 성장이 찢어짐에서 시작되듯, 잃어버림에서 찾아온 고통은 내게 생채기를 남겼지만 동시에 딱딱한 굳은살도 함께 건넸다.
잠이 오지 않아 공중에 붕 떠 버린 새벽을 채우기 위해 아침 명상을 시작했다. 고요한 숨소리만 나직이 들리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나는 지금 여기 숨 쉬고 있을 뿐, 지난 일들은 다 흘러간 일이라는 걸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내 마음은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혼자서는 전혀 못 할 것 같았던 일들을 시작했다. 예를 들면 운전면허를 따거나 파스타 집에서 혼자 밥을 먹는 일과 같은...
면허증은 내 지갑 한켠을 차지했고, 식당에서는 와인도 곁들여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됐다. 나는 그렇게 뭐든 할 수 있는 어른으로 바뀌고 있다.
잃었기에 속박도 사라졌다. 내가 끙끙 매던 마음과, 욕심부리던 모든 것들로부터 나는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 잊지 못한 몇 톨의 미련이 주변을 맴돌 때도 있지만, 나는 다시금 그 아쉬움을 탈탈 털어내고 곧장 일어설 수 있다. 상실은 자유의 이면이었다.
상실은 내가 가진 것들을 앗아가는 도둑으로 여겼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빈 곳간이 되어버린 줄 알았던 내 마음은 다른 것들로 다시금 채워진다. 그것도 가득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