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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근한 수록 Mar 18. 2022

값싼 추억이 싸구려는 아니잖아요.

 





 포켓몬 빵 열풍이 불고 있다. 사람들은 포켓몬 빵을 사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 가격은 1500원.


 엄청 맛있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게다가 전문 빵집들이 속속들이 생겨나는 와중에 등장한 이 빵은 대단한 고급 빵이라고 말하기엔 껄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켓몬 빵은 없어서 못 파는 빵이 됐다.

 빵은 진열되는 즉시 속속들이 팔려나갔다. 사람들은 편의점 납품 시간에 맞춰 빵을 사거나, 예약을 걸어두기도 했다. 동네 편의점 순례를 하며 빵을 싹쓸이해 오는 사람들부터, 당근 마켓에 올라오는 스티커 교환 요청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편의점 돌기를 수차례, 겨우겨우 빵 하나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내 뒤로 들어온 초등학생은 내 손에 들린 마지막 빵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애써 못 본 체했다. 어린애를 상대로 너무하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별 수 있으랴, 나는 천 오백 원짜리 추억을 사야 했다.


그리고 나와 같이 값싼 추억을 사려는 전국의 어른이들이 22년 3월을 뜨겁게 달궜다.

그렇게 천오백 원으로 추억을 샀다.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오는 싸구려 초코 크림과 퍽퍽한 시트는 꽤나 낭만적이었다. 한 입 베어 문 빵에서는 옛 맛이 느껴졌다. 요 근래 공장에서 찍어낸 빵이겠지만, 내 마음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추억을 먹은 탓이겠거니. 빵을 들여다보니 콕콕 박힌 초코칩과 연갈색의 크림이 보였다. 나는 초코 롤빵을 사는 날이면 동생이랑 하나씩 나눠 먹곤 했는데, 서로 크림이 더 많이 들어간 걸 먹겠다며 머리를 맞대고 눈치 싸움하기에 바빴다. 하나씩 손에 들고 우유에 퐁당 담갔다가 먹는 초코 롤빵은 우리가 싸우다가도 금세 화해하는 무적의 카드였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로켓단 초코롤빵


 게다가 빵 위에 가지런히 놓인 띠부띠부씰. 주목적은 스티커였던 만큼 빵을 고를 때도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나는 항상 슈퍼마켓에 들어가자마자 빵이 있는 매대로 달려가 빵과의 눈치싸움을 시작했다. 미리 보기 방지 종이 한 겹이 덧대어진 띠부띠부씰을 어떻게든 미리 보겠다며 이리저리 빵을 기울여봤었는데, 결국 볼 수 있는 건 없었다. 가끔 스티커가 아래쪽에 뒤집힌 채로 있던 날에는 스티커를 미리 볼 수 있는 운 좋은 날이었다. 스티커를 볼 수 없어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나는 겉 비닐을 살짝 비틀어보기도 하고, 조명에 비춰보겠다며 빵을 들고 기웃대기를 수 차례 반복했다. 이번에는 왠지 그토록 원하던 토게피 스티커가 나올 것 같은 마음에 집까지 가는 발걸음도 가벼웠더랬다. 최애 캐릭터를 기대하며 빵을 고르던 그때의 내가 오늘의 빵 속에서 빼꼼 고개를 들었다.


독파리가 나왔다


 나는 동전 몇 푼으로 나의 추억을 회상하게 하는 이 사태가 참 마음에 들었다.

 빠르고 신선한 자극과 새로움에 노출되어 살고 있던 요즘, 수많은 정보의 틈새를 비집고 물씬 밀려오는 과거의 익숙함이 반가웠다. 익숙함은 편안함을 수반하고, 편안함이 주는 안정감은 마음속 따뜻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과거의 설레던 경험을 어른이 되고 다시 맛봄으로써 마음은 따뜻한 물에 퐁당 담가지고 만다. 말랑말랑해진 마음의 주도 하에 또래들과 서로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자연스레 하기 시작했다. 고오스 빵을 제일 좋아했다던 친구는 바스러지는 케이크 시트가 너무 좋았단다. 게다가 그 빵에 유독 귀여운 스티커가 많이 들어있었다며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스티커를 모아서 공책 한 권에 포켓몬 동물도감을 만들어서 들고 다녔다는 친구도 있었다.(이건 지금도 부럽다.) 붙였다 떼도 끈적이지 않아서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스티커 교환도 자주 했었는데 하도 교환한 나머지 접착력이 바닥나버린 스티커가 수두룩했었다는 얘기를 하며 어른이 된 우리는 깔깔거렸다.



 오백 원이던 빵이 천오백 원이 되도록 나이를 먹었다. 나의 어린 시절도 그만큼 어렴풋해졌다. 그래서일까? 오늘을 살아내느라 잊고 살던 지난 행복을 천오백 원으로 불러올 수 있다는 게 실로 엄청나게 감사했다. 한편으로는 경이롭기도 했다. 감춰져 있던 시간이 주목받으면서 우리는 천오백 원 이상의 추억을 곱씹어댔다. 그리고 이런 오늘은 또다시 과거가 되어 미래의 내게 작은 추억거리로 남아있겠지. 아무리 봐도 값싼 추억이 싸구려일 수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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