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욕심을 좀 부려도 되는데, 그러면 안 되는 것처럼 자신의 욕심을 꼭꼭 누르고 사신다. 억눌린 욕심 위로는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담는다. 엄마는 우리한테 많은 걸 양보하며 당신의 몫을 떼어주고 있다. 그렇게 대다수의 어머니들이 그러했듯, 우리 엄마도 희생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다. 나는 그런 엄마가 미우면서도 고마웠다. 결국은 우리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가 있어 가족들은 좀 더 편하게 지내는 게 맞으니까 내 욕심을 채우겠다고 엄마의 욕심에 대한 거세를 방관할 때도 더러 있었다.
어제는 엄마의 생신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소고기 미역국과 잡채로 밥상을 차렸다. 엄마는 아침 생일상을 보더니 해실 해실 웃었다. '딸 밖에 없네~ 고마워.' 엄마의 말에 괜히 울컥했다. 생일상이라고 하기엔 변변찮은 메뉴였다. 그 흔한 갈비찜이나 전들도 없었다. 부산스럽지 않게, 소박하게 준비된 반찬들이 부끄러웠다.
"우리 퇴근하고 외식할까? 저녁 때는 엄마가 좋아하는 데로 가자! 케이크 초도 불어야지!"
"이걸로도 충분한데? 케이크는 굳이 뭘 또 해. 안 해도 돼."
소박한 메뉴가 충분하다고 했다. 당신은 내 생일 며칠 전부터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잔뜩 준비해 주셨으면서. 멋지게 입으라고 옷도 선물해주셨으면서. 당신은 소고기 미역국에 잡채가 충분하다고 손사래를 친다.
나는 그런 엄마가 미웠다. 이런 날마저 욕심부리지 않는 당신을 내가 만든 것 같아서. 나에 대한 질책을 엄마가 받았다.
"엄마, 그래도 엄마 생신이잖아. 우리 선물도 사야지!"
"밥 차려줬으면 됐지. 무슨 선물이야. 괜찮아."
사실 나는 안다. 엄마도 욕심 있는 사람이다.
엄마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회사에서도 몇 번이나 붙잡을 정도로 촉망받는 인재였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그 꿈은 한 켠으로 밀려났다.
엄마는 예쁜 옷을 좋아한다.
홈쇼핑에서 보여주는 옷을 보면서 살까 말까를 수십 번은 망설인다. 눈을 못 떼는 엄마한테 '내가 사줄게!' 하면 '네가 돈이 어디 있다고. 괜찮아. 잘 안 입을 것 같아.'로 응수하는 우리 엄마.
엄마의 욕심이 고개를 들고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일. 이는 앞으로 내게 주어진 숙제다.
내가 있는 한, 가족이 있는 한 당신의 욕심은 매번 맨 마지막 순위로 밀린다. 주말에는 엄마를 모시고 밖으로 나가야겠다. 엄마가 좋아하는 게장백반을 먹고, 예쁜 봄 옷도 한 벌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