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무력한 현실
거실 바닥과 탁자 위에는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뜯어진 포장지들과 쓰레기가, 싱크대와 식탁 위에는 너저분하게 쌓인 배달 용기가, 그리고 그 용기에 먹다 남은 음식 잔해가 부패 되면서 풍기는 불쾌한 냄새가 온종일 컴컴한 집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침대나 소파에 누워 눈만 끔뻑이며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일어날 힘은 없어도 먹을 힘은 남아서 뭔가를 계속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배고파서라기보단 뭘 먹지 않고는 입이 심심해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화장실 갈 때 빼고는 앉거나 서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외주를 의뢰한 이에게 연락이 오면 헐레벌떡 일어나 책상 앞으로 달려갔다. 그때가 유일하게 제정신이 돌아오는 순간이곤 했다.
앉기까지가 힘들어서 그렇지, 초반에는 그래도 앉으면 서너 시간은 거뜬했다. 그 잠깐이라도 집중해서 일하면 뇌에서 호르몬이 나오는지 조금은 의욕적이곤 했다. 하지만 그 상태로 나를 계속 끌고 가진 못했다. 어딘가 고장 난 것처럼 나도 나를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난여름은 너무하다 싶을 만큼 더워서 집에만 있어도 딱히 죄책감 들 여지가 없었다. 어쩌다 한 번 외부 일정이 잡혀서 나갈 때면 이미 외출 준비할 때부터 높은 습도에 지쳐서 힘에 겨웠고 다녀오면 하루는 꼬박 시체처럼 누워 잠만 잘 정도로 기력이 없었다. 8월 한 달간 공식적인 외출은 아마 다섯 번이었을 정도로 내내 집에만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러 가지 못할 정도로 일상적인 모든 일이 버겁고 힘들었다. 주말이면 오는 남자친구가 밀린 빨래를 돌리고 쓰레기를 버렸다. 그는 간혹 주말 이틀 내내 무기력하게 자기만 하는 날 보고 집으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나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무력한 현실을 잠으로 계속 회피했던 것 같다. 물론 내 의지가 아닌 잠이 쏟아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거였지만, 아마도 내재된 회피 욕구가 드러난 것이 아닐까 싶다. 간혹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되는 환경이 약간은 섬뜩하게 느껴졌다. 가족도 남자친구도 없었다면 나는 아마 집에서 혼자 쓸쓸히 죽어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그러면서도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 집에 더 꼭꼭 숨어지냈다. 누군가 밖에서 내가 깨어 있는 걸 몰랐으면 싶어서 불도 켜지 않았다. 나에 대해 누가 조금이라도 아는 게 너무 싫었다. 행여 주차하다가 혹은 집에 들어오다가 계단에서 누구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렇게 싫었다. 그래서 인기척이 있으면 차 안이든 집 안이든 어디든 그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갔다.
우울하다거나 불안하다거나 슬프다거나 눈물이 난다거나 그러진 않았다. 무엇도 할 의욕이 없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럼에도 의사는 ‘우울’과 ‘불안’ 외의 단어는 모르는 사람 같았다. 한 달에 한두 번 진료하는 그는 앵무새처럼 우울과 불안만 읊어댔는데 만날 때마다 그의 빈곤한 어휘력과 원론적 학습이 얼마나 형편없나만 확인하고 올 뿐이었다. 나는 그를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그가 내게 처방한 몇몇 약만을 신뢰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