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성공 서사에서 벗어나 나만의 내공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
그녀는 두 가지 용기를 지녔다.
하나는 원천, 자기의 낯선 부분으로 갈 용기다.
또 하나는 그곳에 갔음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거의 자기가 없는 채로 그녀 자신에게 돌아올 용기다.
그녀는 자기 바깥으로 미끄러져 갔다.
그녀는 그럴 수 있을 만큼 엄격했고, 난폭한 끈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떼내어지고, 발산되고, 의미의 허물을 벗겨 내면서 바깥으로 나왔다.
벌거벗은 시각에 이를 때까지 시각의 옷을 벗겨 내야만 한다.
눈이 두르고 있는 시선을 제거하고, 요구하는 시선을 눈물처럼 흘려보내야 한다.
바라보지-않음을 통해, 미리 기획된 설계 없는 시각에, 응시에 이르러야 한다.
- 엘렌 식수, <리스펙토르의 시간>, 1989, 24쪽
초등학교 나 때는 국민학교였던 그 시절부터 대학 4년까지 총 16년을 학교에서 보내고, 거의 공백기라 할 틈도 없이 조직에 들어가 역할을 부여받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유년기를 제외한 30년이 넘는 시간을 한정된 무리 속에서 지내다 보면 온전한 나라는 개인보다는 집단에 속한 나만 생각하게 된다. 주어진 환경에서 주어진 역할만 하다 보니 그런 체제에 익숙해져 홀로 황무지에서 길을 만들어 나갈 생각조차 안 하게 된다. 조직 밖으로 나와 독립적으로 먹고살 거리를 찾아갈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막막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늘 직장인으로만 내 포지션을 생각하게 됐다. 어느 회사의 누구로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어느 조직이든 장단이 있고 내부인으로 있을 땐 크게 보이던 단점이 외부인이 되어 시간이 흐르고 나면 기억조차 흐릿할 만큼 늘 별거 아닌 일로 느껴지게 된다. 발을 들이고 들이지 않고의 차이가 주관적인 감정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 과거에 나를 시름에 빠지게 하던 고민도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건만 그땐 뭐 그리 혈안이 되었나 싶을 만큼 멋쩍을 때도 있다. 더욱이 생애주기별 인생의 고락을 여러 층위에서 경험하고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나는 조직 내의 사사로운 것들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직급과 직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위아래를 구분 짓는 계급을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그런 위치는 바깥에서 볼 땐 애들 소꿉장난마냥 내겐 너무나 가벼운 소품과도 같았다. 난 그저 내 노동력만큼 돈만 받으면 된다 생각했다. 여유로운 생활을 유지하며 자아실현도 하는 것, 이것이 내게 직장이 필요한 이유였다.
그러나 조직은 결국 직급과 직책에 의해 돌아간다는 걸 내가 간과했다. 일이 제대로 돌아가는 데 때때로 힘만큼 유용한 건 없었다. 일의 안정성과 지속성 또한 그 힘에서 비롯된다는 걸 깨달았을 땐, 난 이미 조직 밖으로 나올 채비를 한 뒤였다. 너무 많은 말과 복잡하게 얽힌 감정들이 다양한 경우의 수로 조직의 흐름을 뒤바꾼다는 걸, 그게 결국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됐다. 안일한 태도는 탈락으로 이어진다는 걸 그 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면서 알고 있었으면서도 현실에서 나는 무지했다. 어딜 가나 그놈의 정치질이 끊이질 않고 뉴스는 온통 정치질로 도배되다시피 하는 것만 봐도 생존을 위한 모략은 인생의 상숫값 같은 것이었다.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고 나 혼자 잘할 수 있을 일이 뭘까 곰곰이 고민했다. 20대 때부터 골몰해 온 노동의 의미에 대해서 과거에는 지속성에 방점을 두었다면, 지금은 ‘재미’에 방점을 두고 있다. 재밌어야 더 잘하려는 의지도 생기고 뒤따라오는 열정과 지속성, 부의 창출까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생계에 대한 부분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이걸 간과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아주 기본적인 최소한의 생활만 가능하다면 내 능력을 의미 있게 극대화할 수 있는 일로 포지션을 잡으려고 한다. 어쩌면 딸린 자식도 없고 누군가를 부양할 짐이 없기에 가능한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