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이 되는 일"
대부분의 이야기에 담긴 핵심은 역경에서 살아남는 일,
세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일,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이다.
어려움은 늘 필수 사항이지만,
거기서 무언가를 배우는 건 선택 사항이다.
-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내가 편집자로 일한 첫 출판사는 예술전문출판사로 역사가 긴 곳이었다. 편집자 대부분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를 나온 것과 달리 난 인서울이긴 했지만 학벌로 따지자면 조금 뒤처지는 쪽에 속했다. 딱히 내세울 게 없던 나는 나만의 경쟁력을 만들어야 했다. 악착같이 일에 몰두했고, 뭐든 적극적으로 했다. 당시만 해도 주 6일제라 일이 많을 땐 일요일도 쉬지 않고 회사에서 보내기 일쑤였다. 회사에 침낭을 두고 마감 주에는 회사에서 잠을 잤고, 책임 편집한 책 마케팅을 위해 직접 담당자를 만나러 다니며 기획도 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상사들은 그런 내 태도를 흡족해했고, 입사 한 달 만에 연봉이 오르더니 몇 개월 혹은 1년 단위로 소액이지만 급여가 올랐다. 순진한 사회 초년생의 사기를 높이는 데 돈 만큼 정직하고 달콤한 보상은 없었다. 승진도 꽤 빨랐다. 3년도 되지 않아 대리를 달고 다음 해에는 과장이 되더니 과장이 되던 다음 해에는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게 됐다. 그러나 그 연차의 내가 팀장 역할을 하는 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벅찬 일이기도 했다. 여하튼 상사들이 보내주는 신뢰와 지지는 첫 회사를 쉽게 그만두기 어렵게 만들었다. 다른 분야의 책에 대한 갈망이 있던 나는 숙고 끝에 겨우 퇴사를 하고 이직을 했다. 이후 이직한 두 출판사 역시 좋은 곳들이었다. 대체로 상식 안에서 질서 있게 시스템화되어 있었고 개인적으로 지금도 존경하는 대표님들과 각각의 장점이 있는 동료들 덕에 나는 부족함을 채워가며 제자리를 찾으려 애썼다. 그 좋은 회사들을 두고 퇴사한 것은 이후에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후회할 만한 결정이었다.
그간 이렇다 할 고생 없이 사회생활을 해서였는지 마흔 넘은 늦깎이 경력자는 뒤늦게 혹독한 사회생활을 경험하게 됐다. 덕분에 맷집이 세지기는 했다. 해마다 이곳저곳 전전한 덕에 나름 유용한 스킬과 정보만 내 식대로 체화하게 된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어떤 날것의 아이템만 던져주어도 콘텐츠로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경력과 비례해 성장한 업무적인 스킬은 자생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긴 했으나 정신은 점점 연약해져만 갔다. 흑백요리사 마지막 결승전에서 척하느라 힘들었다는 최강록 셰프의 진솔한 속내에 코끝이 찡하며 위로를 얻은 것처럼, 어쩌면 나도 척하느라 지쳤는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 연차니까 별거 아닌 척, 다 아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척할수록 공허하고 척해야 해서 혼자 몰래 이것저것 공부하느라 잠은 잠대로 부족해 고단하고.
생계와 자존감 사이에서의 줄타기는 아마 일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딜레마 같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가족들은 경기 불황에 일자리 구하기 쉽지 않으니 퇴사는 다시 생각해 보라며 그만두기를 극구 말렸다. 3년 전 노동 강도가 센 물류 일조차 주 6일로 일해도 월 300만 원 벌기 쉽지 않다는 걸 땀 흘려가며 체험한 터라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엔 따스운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만큼 몸 편한 일이 없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참고 버텨야 하는 건가, 버티다 보면 나아질까,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관계가 재설정되거나 평가에 대한 관점도 달라질까, 이래저래 생각을 해 봤다. 하지만 낙관적인 미래를 막연하게 기다리기엔 이미 내 속이 너무 곪아 있었다.
수치심으로 인한 자존감 침식은 결국 자기 상실에 이른다. 버티는 게 답이라는 만인의 방식이 늘 좋은 결과만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례는 이미 수없이 봐왔다. 여전히 나는 생계와 자존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다만 예전에 비해 이제는 숫자나 커리어보단 나를 지키는 것에 좀 더 방점을 두기로 했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저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답이 다를지 모른다. 사적인 재활 치료처럼 쓰는 내 연약한 기록이, 그저 나처럼 먹고 사는 일을 하다 마음을 다친 누군가에게 숨 쉴 구멍이 되었으면 더없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