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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량 김종빈 Oct 09. 2017

중력(2017년 8월 22일자 이야기)

 "뉴튼의 법칙 알지? 인력이라는 거 있잖아. 세상 모든 것은 각자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나는 그게 신기하다." 뜬금없이 그는 주정을 해댔다. "중력 있잖아. 그거 실은 다들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인력이라는 게 중력이라는 거야, 숨을 쉬든 쉬지 않든, 뭐라도 가지고 있다는 거야. 알겠어, 멍청아." 학교 다닐 때 물리는 지지리도 못하던 녀석의 입에서 중력이라는 단어가 나오다니, 살다보니 별일이다.(그리고 멍청이는 내가 아니라 너다.)
 
 술도 못하는 나를 앞에 두고 혼자서 취한 것이 외로웠는가, 끌어당기니 어쩌니 주절주절, 중력에 대해 일장연설이다. 뉴튼이 오래전에 죽었으니 망정이지, 살아서 이 모습을 본다면 통곡하리라. 만유인력이 술꾼의 안주거리가 되었다.
 
 탱고라도 배울 양, 길 위에서 비틀대는 녀석을 제집 현관에 밀어 넣고는 다시 길로 나왔다. 중력이라, 나는 무엇에 끌리어가고 무엇을 끌어대고 있으려나. 뭔가를 생각해보려 해도 딱히 떠오르지 않아 애먼 걸음만 탓했다. 생각도 떠올리기 전에 길이 끊어지면 어떻게 하냐며 투덜투덜 입술만 오물댔다.
 
 우리 엄마는 가끔씩 내가 어릴 적 아팠던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 엄마는 나를 신에게 바쳤다고 했다. 뇌수막염으로 죽을지도 모르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신에게 빌고 또 빌며 나의 연명을 기도한 것이지. 내가 세상 모든 것을 끌어당기다 도리어 끌려가는 것은 어쩌면 그날 정해진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기억에도 없는 사신에게서 도망쳤고, 엄마의 기도는 중력을 가지게 되었다.
 
 달은 지구에게 끌려오고, 지구는 태양에게 끌려가고, 태양은 뭐, 또 뭔가에게 끌려가겠지. 그러니 세상의 모든 것이 나에게 끌려오고, 나는 엄마의 기도에 끌려가고, 엄마의 기도는 신에게 끌려가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나는 운명이라는 것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꼭 무언가로 내 인생이 수렴되어야 한다면 엄마의 기도였으면 한다. 실제로 신이 있었는지, 그 신이 내게 깃들어 연명하였는지 알 길이 없다만 그래도 엄마의 기도는 아직까지도 건재하니, 엄마의 기도에게로 가고 싶다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엄마는 기도한다. 내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않기를, 혹은 어디 가서 때리고 다니지 않기를, 괴롭거나 외롭거나 지독히 슬퍼하지 않기를, 몸이 병들고 마음이 가물지 않기를, 좀 더 선한 눈빛으로 살기를, 내손이 주먹 쥐어지기보다 손바닥 모두를 내보이기를, 우리 엄마는 아직도 기도를 한다.
 
 아까 녀석이 그랬지. 중력이 너무 강한 놈들은 어디에도 끌려 다닐 생각이 없어서 자기자리에다 온통 끌어다 놓는데 그러다가 블랙홀이 되는 거라고, 뭐든 집어삼키는 지독한 놈이 되어버리고 마는 거라며 고개를 사방으로 저어대었어.
 
 내 동생을 업은 채 나를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뛰어다니던 엄마의 기도에 끌린 덕으로 나는 고약한 블랙홀이 되지 않았다. 세상 전부를 끌어당길 셈이었지만 나 역시도 끌리어 한줌의 빛도 남기지 않고 집어삼키는 놈은 면한 것이다. 엄마의 손에 끌리어 다니던 시절부터 은을 입었다.
 
 나의 중력이 무엇을 당기고 있을는지, 나의 운명은 또 무엇과 팽팽히 힘을 겨루는지 모르겠지만, 그 모든 것이 어떠하든 나는 엄마의 기도에 끌어당겨지기를 바란다. 나이가 들어 몸이 쇠하여도 모친에게 그만한 힘이 평생토록 머물기를 또한 바란다.
 
 추신, 내가 나이를 먹는 일이야 서운하고 말았는데, 엄마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꽤나 원망스러운 일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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