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
아마, 2012년이었을거다. BBC에서 짧은 다큐를 보여주는데, 남극에서부터 남아메리카까지 펭귄이 이동하는 방법을 밝힌다고 하더라. '뭐, 헤엄쳐서 가겠지.' 심드렁한 표정으로 영상을 보는데 굉장한 장면이 펼쳐졌다. 펭귄들이 털을 고르고 날개를 푸득이더니 그 짧은 다리로 도움닫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많은 펭귄들이 하늘로 떼지어 날아올맀다. 펭귄은 그렇게 남아메리카까지 이동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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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BBC에서 만우절을 겨냥해서 만든 페이크 다큐였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그 영상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분명히 녀석들 날 수 있을 줄 알았어." 어찌나 흥분했는지 그 영상이 가짜일 거라는 생각은 못하고 친구들에게 알리기까지 했다. "봐라, 야, 이것 봐. 펭귄도 날 수 있다니까. 여기 활강하는 거 봐라. 아하하, 펭귄이 나는데 여태껏 모르고 살았어!"
영상은 꽤 그럴싸하게 만들어졌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게 거짓말인 걸 알았을거다. 그 덩치를 하늘로 날아오르게 하기에 날개는 너무 작았다. 아무리 날개를 휘저어도 날아오를 수 있을 리 없는 녀석들인데, 나는 속아넘어갔다. 심지어 하늘을 가득 메우는 펭귄 무리를 보고는 코가 찡했으니, 속아 넘어갔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나는 믿고 싶었다. 어떤 펭귄은 날 수 있을 거라고, 뒤뚱거리는 모습이 때때로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어디에선가는 사람들의 비웃음은 아랑곳 않으며 날아오르고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은 차마 입 밖으로는 내지 못하고 살았는데, 영상 속에서 수많은 펭귄이 날아오르니 덜컥 믿어버린 것이다. "거봐, 나는 이럴 줄 알았다니까, 사람들 모르는 곳에서 이 녀석들은 날고 있었어." 그날 친구들이 만우절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한 달은 그렇게 믿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펭귄은 날아오르기에 너무 무거웠고, 나는 너무 욕심이 많았다.(변명하자면, 영상이 너무나 그럴싸했다. 심지어 BBC가 찍어온 거라니, 믿고 싶은 사람에게 이만큼 달콤한 거짓말이 또 있을까.)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만우절이면 펭귄이 날아오르는 영상을 찾아서 본다. 마치 나만의 만우절 맞이 의식 같이. 아직도 펭귄은 날아오르기에 무겁지만, 나 역시 욕심이 많아서 이렇게 미련이 남는 것이겠지.
피식하고 웃음이 나는 건, 그날 바보 취급 당한 것을 생각하면 만우절이 언짢아야 하는데, 도리어 고맙다는 것이다. 만우절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만 그 양반 참 잘했네 싶다. 연중 한 번쯤은 아니란 걸 알면서도 믿고 싶은 거짓말을 해도 되는 날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펭귄이 날아오르는 걸 보면서 속이 다 개운했으니까.
거짓말 같은 진실이 있고, 진실 같은 거짓말도 있고, 거짓말 같은 거짓말도 있는데, 이날만큼은 믿고 싶은 대로 잠시간 믿어도 되니 좋잖아.
나는 비뚤어진 구석이 있다. 해서 가끔씩 다수의 사람들이 진실이라며 세상에 못 박아 고정한 이야기들을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는 하는데, 만우절 덕분에 단 하루지만 좀 느슨하게 해도 된다는 게, 꿈같은 소리도 해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오늘도 2018년의 만우절을 펭귄의 영상으로 시작했다. 왜, 언젠가는 날 것 같아서, 사람들이 말도 안된다며 손사래를 치는 중에 녀석들이 날아오를 것만 같아서, 그래서 올해도 새벽부터 펭귄의 날아오르는 영상을 찾아봤다.
추신, 그래요, 펭귄은 무겁고, 날개도 짧아요. 그래서 못 날아요. 지금, 당장은요.
* 커버이미지 출처 - B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