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너는 죄다 사진이 걷는 것뿐이야?" 친구 하나가 내 여행 사진을 보고서 핀잔을 주었다. 그러게나 말이다. 내 사진은 하나같이 걷는 사진이 다였다. 여행지가 어디든지 그랬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데,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걷는 사진을 찍는다. 예전에 언젠가, 내가 혼자 들떠서 길가를 소란하리만치 배회하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사진찍어주었는데,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인가 내가 여행 중 길 한복판에서 소란스레 사람들과 있는 것을 누군가가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매번 길 위에서 어딘가로 걷고 있는 모습. 게다가 시선은 이리저리 산만해서 카메라에 얼굴이 제대로 찍히지 않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사진들이 제일 좋았다.
"그게 내 본질이라서 그런가 봐." 나는 누군가가 내게 종종 왜 걷는 사진뿐이냐고 질문하면 이렇게 대답했다. 본질이랄까, 고집이랄까, 아니면 취향이랄까.
나는 매사 요령도 부족하고, 재능이라고는 게으름을 실컷 부릴 수 있는 것 정도가 전부다. 지니는 평범함조차도 평범한 범인, 그래서다.
발이 빠른 것도 아니고, 길눈이 밝은 것도 아니다. 남의 차를 쉽게 얻어타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름길을 아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때때로 방향마저 잃어버리고 그늘 아래 적당히 주저앉아 빈둥대기를 즐기는 그런 평범함, 혹은 평범함보다 더 아래의 평범함. 나는 그런 사람이다.
이 사실을 납득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쓸데없이 자존심은 강해서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것을 납득한 뒤로 나는 걷기를 택했다. 그저 느리고 때로는 쉬어가더라도 계속 걷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왜 여행지는 특별함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이 있다. 심지어 세상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인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하기도 한다. 특별한 여행지라면 더더욱 그럴 테고. 특별한 여행지, 특별한 사진, 즐겁고 유쾌한 순간들이다.
하지만 나는 모자라기도, 조금 비뚤어지기도 해서 특별한 어딘가에서조차도 그저 걷기만을 바랬다. 그건 어쩌면 작은 반항이었을지도, 그게 아니라면 나름의 자랑일지도 모르는 나의 걸음, 걸음들이었다.
아마 나란 녀석은 그토록 소원하는 북극에 가서도, 꿈에나 갈 수 있는 달이나 화성에 가더라도 걸을 뿐이겠지. 멋진 포즈를 취한다거나 특별한 무언가를 하는 것은 내게 무리이기도 하고, 어울리지도 않을 것 같고 해서 걸으려고만 하겠지.
왼발이 땅에 닿으면 오른발을 올리고, 몸이 쓰러지려는 찰나 다시 오른발이 땅에 닿는 걸음. 걸음이란 본래 쓰러지는 몸을 쓰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않나. 내게는 무엇보다 어울리는 일이다.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듯 사진 속 나는 계속 걸었고 아마 내일도 그렇겠지. 누가 내게 왜 사진이 죄다 걷는 것뿐이냐 묻거든, 나는몇 번이고 같은 대답을 해주어야지.
그게 나의 본질이니까, 그나마 계속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서 그런 게 아니겠냐고.
나는 그뿐이다. 정말 그뿐이었다.
추신, 가끔은 달려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걷는 것으로 돌아가는 게으름뱅이들이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