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증명하고 싶다. 확인시켜주고 싶다." 그런 욕심이 있었다. 보잘 데가 없는 내 글들이라도, 가끔은 그럭저럭 괜찮은 것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어느 사이에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건 꽤나 기쁜 일이고, 힘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고작해야 이런 습작인데 이렇게나 호의를 받다니, 이래도 괜찮은 건가 주저주저했다. 심지어 언젠가 한 번은 이 사람들이 다 같이 나를 놀리는 건가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진심으로 기뻤다. 내가 써내놓은 것들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이, 응원이 된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그런데 그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조금씩 욕심이 생기더라. 내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뭐라도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뭐라도 돌려주고 싶었다.
반푼이도 되지 못하는 나의 제멋대로 쏟아내는 이야기에 마음을 쓰고 시간을 써주는 사람들이 고마웠으니까.
그래서 생전 처음으로 신춘문예에 글을 보냈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당신께 위로가 되었던 글은 생각보다 괜찮은 글이었어요. 당신을 응원하던 글은 사실 꽤 괜찮은 글이었어요. 내 이야기를 마음 써가며 읽어준 당신의 안목은 꽤 괜찮았어요." 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 내게는 아직 그만한 이야기를 하기에 모자람이 있었다. 모자라다는 것은 알았다. 부족하고 어설프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지만 조급했다. 그 누구도 내게 보답을 바란 적이 없었다지만 괜히 움츠러들 대로 움츠러들었다. 민망하고 미안하고 그런 것들이 하루 종일 엉켜 붙어 어떤 것도 끄적거릴 수 없는 날이 몇 날 며칠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근근이 버티는 것이 전부였고, 몇 자 적는 것도 힘들어 쓰고 지우기만 해대는 나날이었다.
그러던 중에 혼자 여행길에 올랐다. 답답함도 있었고 지쳐버린 탓도 있어서 별 기대는 없는 여행.
나는 꽤 재미없는 표정이었다. 여행 시작부터 차 조수석에 앉아 졸다 깨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 시간쯤 달렸을까, 무슨 변덕인지 경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네다섯 시간을 더 가야 하니 그게 좀 지루했는데 멋진 경치가 연달아 이어지니 아무래도 괜찮은 기분이 돼버렸다. 먼 길이어도경치가 좋으니 꽤 근사한 기분이 들었다.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구나. 경치를 보는 일도 있었어.'
아직은 내 글을 좋아해 주는 은인들에게 해줄 것이 없다. 어쩌면 내 이야기가 근사한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당신들의 감수성이 근사한 것일지도, 아니 정말 그럴지도.
생각보다 먼 길이 될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당장이라도 "당신들이 좋아해 주는 이 글은 꽤나 괜찮아요. 세상 사람들이 다들 괜찮다고 해요. 그러니까 그런 나를 알아봐 준 당신들의 안목은 정말 대단해요."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쉽지는 않다. 지금의 나로서는 그저 이 먼 길의 끝에 다다르기까지 기다려달라는 말밖에 해줄 말이 없다.
하지만 염치없이 나와 당신 사이에 약속 하나를 두고 싶다. 먼 길 가는 동안 지루하지 않도록 좋은 경치를 보여주겠다고.
당신이 너무 외롭거나 괴롭지 않도록, 어떤 날 당신이 너무 외롭고 괴로워지면 아무쪼록 내 이야기가 당신에게 소박한 의미가 되도록, 그렇게 부족한 글이나마 당신을 끌어안을 수 있기를 바라며 약속해본다.
추신, 당신이 보는 경치, 그 또한 더할나위 없이 멋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