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행효자가 뭘까요?" 효자면 효자고, 효녀면 효녀지, 행효자, 행효녀라니 이게 무슨 뜻일까.
오늘 산에 올랐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 절이 있어 들렸다. 산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사실 그냥 지루한 오르막에, 불친절한 내리막이라 더 할 이야기는 없네.(아! 신록으로 하늘이 채워진 중에 벚꽃잎이 떨어지는 풍경은 정말 예뻤다.) 아무튼, 절에 들렸더니 경내 안에 연등이 가득해서 진풍경이었다.
나는 불자가 아니라서 절과는 크게 연이 없어서 신선한 기분이었다. 신세계라도 본 것 마냥 연등을 하나씩 살폈다.(신세계가 맞을지도, 알려고 하지 않은 그래서 몰랐던 세계였으니까.) 연등 아래에는 작은 쪽지들이 달랑거리며 붙어있었고, 쪽지에는 '어디에 사는 누구' 정도의 지역과 이름이 적혀있었다.
지역은 국내에서부터 중국, 미국도 있어서 꽤나 다양하건만 누가 적혀있는가는 하나같이 비슷했다. "가족",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그 작다란 종이에 빼곡히 채워져있었다. 갸륵한 정성으로 단정히 쓰인 글자들은 모두 이름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행효자 누구누구, 행효녀 누구누구라고 쓰여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무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소인배라서 그 자리에서 대뜸 물었다. "왜 행효자라고 쓰는 걸까요?" 경내가 내 탓에 소란스러워졌다.
"신에게 보내는 글이라 그래요. 내 아들이 효를 행하는 누구누구입니다. 행효자랍니다 하고 이야기하는 거죠." 내가 계속 소란스럽게 굴 것이 염려되었는지 한 선생님께서 답을 이렇게 주셨다. "아, 아, 아..." 말문이 막혔다.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공허하게 감탄사만 연신하고 말았다.
연등에 소원을 달아서 신에게 비는데, 부모가 자식들의 이름을 적으며 말한다. "우리 아들, 딸이 효자, 효녀랍니다. 그러니 잘 봐주시고 보살펴주세요." 세상에 부모 생각하는 자식이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다만, 경내 연등 아래에는 모두 행효자, 행효녀의 이름만 있었다.
아마 소원을 본 신은 이렇게 되물을지도 몰라. "정말 네 아들, 딸이 그렇게 잘했니?" 그러면 부모들은 한결같이 단숨에 대답하겠지. "네, 저의 아들, 딸은 참으로 효자, 효녀이니 축복해주세요."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렇다고 할 테지.
집에 가고 싶어졌다. 엄마가 좀 보고 싶어졌다. 아부지랑 정치 이야기를 하며 투닥거려도 좋겠네 싶었다. 또 잊어먹고 있었다. 우리 가족에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깜빡하고 말았다.(깜빡할 것이 따로 있지.) 우리 집도 어디다가 나를 내보일 때는 효자라고 하겠지. 절대 거짓말이 아니라면서 말이야.
아들 노릇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아서 사실, 뭘 해야 효자 소리를 듣는지도 모르겠네. 나도 연등 밑에 하나 달아놓을 걸 그랬나. "신이시여, 우리 아부지는 목소리만 크지, 순한 사람입니다. 우리 엄마는 좀 과할 때가 있지만, 의로운 사람입니다. 착한 사람들입니다. 축복하소서."
추신, 딴소리인데 오는길에 고속도로에 세워져있는 푯말을 봤다.
졸리면, 제발, 쉬었다 가세요.
그래, 힘들면, 제발, 쉬었다 하세요.
* 커버이미지 출처 - 노인숙 선생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