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부조리하고, 나도 부조리하고, 풍년이네.

재주넘기

by 서량 김종빈

나는 구걸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병적이라 할 만큼 가혹하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해코지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아니고, 그들을 동정하지 않고 그들의 사는 방식을 절대 이해하지 않는 가혹함. 어쩌면 비난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특별한 원한이 있지는 않다. 그냥 겪어본 바에 의해서 이렇게 되었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집에는 여행을 간다고 말한 뒤 서울역에다. 적당한 자리를 골라서 자리를 펴고 걸인 틈에 섞였다. 지금 하라고 하면 못하겠지만 그때는 무슨 생각인지 거지, 노숙자가 되어보려 했다.


궁금하기도 했고 심심하기도 해서 시작한 짓이었다. 혹자는 내게 지독히 사치스런 장난, 못된 행동이라고 했다만, 해보지 않았다면 그런 말을 하기 전에 한번 해보기를 권한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걸인들의 세계도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것은 너무나 달라서 말이다.


어쨌거나 그곳에서 지낸 일주일로 나는 구걸하는 사람들을 동정하지 않는다.(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중에 심심할 때 길게 한번 풀어보자, 거지왕 김종빈 비긴즈 같은 걸로.) 그들의 대부분은 구걸을 선택했으니 동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고, 거기서 여러 일을 겪고 나니 도울 마음도 안 생기고 뭐, 그렇다.


그런데 볼리비아는 서울역과 조금 달라서, 고민이 생겼다.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구걸이 선택지가 아니라, 그곳까지 밀려온 것만 같아서 어떻게 보아야 할지 감이 안 온다. 나이 들어 어떤 일도 못할 것 같은 사람들. 그들은 최저생계비를 벌기 위해 나온 것만 같았다.


그래도 주지 않고 버텼다. '함부로 동정하지 말자, 그러면 안 된다. 동전 몇 닢으로 내 마음은 편해지겠지만 그래도 안 된다.' 그렇게 나는 여기서도 오늘이 오기까지 버텼다.


그런데 오늘 기어이 무너졌다. 한 여자가 길가에 앉아 구걸을 했다. 눈이라도 마주칠까 싶어서 먼 하늘을 보며 걸었다. 구걸하는 곁에서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하나, 이제 한살이나 좀 되었을까 싶은 아이가 하나 있었다. 볼리비아도 겨울이라 날이 찬데 여인과 아이 모두 다행히 꽁꽁 싸매고 나와있었다.


나는 그들과 혹시라도 눈이 마주칠까 싶어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저쪽 횡단보도에서 5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 하나가 재주를 넘는다. 신호 앞에 선 차들을 마주하고 옆 돌기를 한다. 제대로 된 옆 돌기도 아니다. 두 손만 바닥을 짚고 엉거주춤. 구걸하는 여인의 맏이 딸이었다. 두 꼬마 아이들의 누나였다.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한 블록을 다 지날 때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터졌다. "아, XX, 세상 정말 어디나 XX같네, 아, 부조리한 게 풍년이야. 아주 XX이 풍년이야."(표현이 과해서 민망하지만 아직도 내 기분은 이렇다.) 방언터지듯 궁시렁거리며 지나온 한 블록을 되돌아갔다.


아이 앞까지 갔다. 아이 얼굴을 보니 코가 좀 나와있었고, 어디서 묻었는지 검댕이가 좀 있었다. 행여 눈이 마주쳐 내 마음이 불편해질까봐 외면했던 얼굴이다.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물론 엉터리 스페인어로.)


"께 보니타!에로 베르 우나마스 케 투 아세르." 나는 아이에게 예쁘다며 한번 더 보여달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는 잠시 주저하더니 다시 재주를 넘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돈을 조금 꺼냈다. 그리고 아이에게 주었다.


"에스토 에스 투 디네로, 뽀르케 아세 부에나, 시 아세 마스 부에나, 오 아세 오트로스 부에나, 뿌에데 테네르 마스 디네로, 포르 헴쁠로 에스뚜띠아 마떼마띠까, 잉글레스, 칸타르, 오트로스" 나는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 돈은 네가 구걸해서 받은 게 아니라 재주를 잘 넘어서 받은 거라고, 앞으로 더 잘하게 되거나 다른 것도 잘하게 되면 더 많이 벌 수 있을 거라고.(볼리비아에 와서 처음으로 내가 스페인어를 못하는 게 답답하고 짜증나고 화났다.)


아이가 내 이야기를 알아들었을까, 어땠을까. 그러고서는 집으로 오는 길, 나는 혼잣말을 중얼댔다. '이건 구걸하는 사람에게 돈을 준 게 아니니까 괜찮아.'(뭐가 괜찮은지는 모르겠지만.) 오는 길 내내, 아이가 부디 자신이 번 돈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내가 세상의 부조리에 뭘 할 수 있겠냐, 한국에서도 부조리에 휘둘리기만 하던 삶이었는데, 내가 뭘 할 수 있겠냐. 근데 오늘 아이에게 말도 안 되는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조금이나마 좌절이 옅어졌다.


내일 먹을 점심 값으로 내 마음은 조금 편해졌다. 아, 평소에도 내가 싫었지만 오늘은 유독 싫어지네. 아 하하하.


추신, 내가 한 짓이 부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커버이미지 출처 - 꼬마아이의 일터가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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