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난보다 누군가의 갈증이 먼저 눈에 들어오거든.

식수대

by 서량 김종빈

여긴 정말 대단한 곳이야. 공원에 떠돌이 개들을 위한 식수대가 있거든, 정말이지 대단한 곳이야.


여기는 생각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 가난의 모습이야, 내가 알던, 내가 겪었던, 그리고 어쩌면 다시 또 겪을지 모를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유난스러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금세 눈에 들어오는 가난이 있어. 산의 주름마다 가난이 걸쳐있어서 오히려 가난 같은 건 숨길 것도 아니라는 느낌마저 들더라.


도시는 하늘을 연모하는 지, 당장이라도 맞닿을 것 같아. 그 중에도 하늘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 내가 지금 신세를 지고 있는 도시는 이렇다.


도시는 쉼 없이 두근거리고, 도로는 사람과 차들로 그 생명력을 자랑하더라. 축제는 또 얼마나 많던지, 내게 벅찰 지경이야. 머리 위로는 비행기가 낮게 날고, 그보다 더 낮게 케이블가 지하철을 대신해 사람들을 도시 구석구석으로 보낸다. 마치 도시 하나가 살아보겠다고 애쓰는 것 같더라니까. 정말 가난하고, 바쁘고, 뜨겁게 숨을 몰아 쉬는 도시야.


그래도 이 정도는 생소한 광경이 아니라서 ‘아, 여기는 이렇구나.’ 하고 말았어. “도시라면, 이 정도는 하지.” 같은 혼잣말이나 해대면서. 그런데 동네를 돌아다니는 중에 “어?” 싶은 걸 봤어.


공원을 지나고 있는데, 목걸이가 없는 개 한 마리가 부리나케 내 앞을 지나는 거야. 그리고는 자주 온 듯, 능숙하게 자리를 잡고 물을 마시더라고, 그 자리에 길거리 개들을 위한 식수대가 있던 거지. 대단하잖아. 어떻게 여기 사람들은 주인 없는 개들의 갈증까지 챙겨 줄 생각을 했을까. 그래서 이 동네 길거리 개들은 사람을 피하지도 않고 구태여 으르렁거리지도 않는 건가.(물론, 가끔 물리는 사람도 있다고는 한다. 이렇게나 개가 많으니 안 물리는 게 더 이상할지도.)


예전에 아부지의 사업실패로 의기소침한 시절을 보낼 때, 고등학교 은사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었지. “가슴 펴고 다녀라. 네 잘못도 아니고, 고개 들고 다녀. 영혼까지 가난해지면 안되잖냐.” 이 살짝 간지러운 이야기가 오늘, 여기까지 왔네.


도시는 온통 개판이고, 길바닥에는 개똥이 굴러다녀도, 가난한 사람들은 녀석들을 위해 식수대를 만들어 놓는다. 가난이 하늘에 닿을 듯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승의 갈증을 걱정하는 것이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좀 부럽다. 한낱 길거리를 배회하는 짐승의 갈증조차 걱정해주는데, 사람의 어려움이야 그냥 보고 지나칠 것 같지는 않아서, 왠지 좀 부럽네,


“영혼까지 가난해지면 안 된다.” 통장잔고에 매달려 살다 보니까, 그래도 사람처럼, 사람같이 살아보겠다고, 살았는데, 사람답게 살았는지는 모르겠네. 어려운 일이야. 주위를 돌아보는 건, 어려움을 보고 손을 내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야. 내 한 몸 건사하는 것도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내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야. 그렇지.


추신, 도시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 멍멍이. 그리고 하늘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 멍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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