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곁에 누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이곳에서는 총격전이 있었다.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뉴스에서는 한인들끼리 경제적 문제로 총격전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총이야 흔하니 놀라울 것은 아니었다. 놀라운 것은 총격전을 벌였던 한인들이 내가 알던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총을 쐈다는 사람이 나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같이 밥 먹고 웃고, 사는 이야기를 하던 친구라는 것이었다. 순한 친구였다.
왜 그랬을까, 어째서 그랬던 걸까. 아니다. 사람인지라, 사람은 무서울 정도로 강할 때도 있지만 놀랍도록 약할 때도 있으니 그랬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래도 모를 일이었다. 어째서 총까지 들게 되었는지 말이다. ‘그럴 수 있어.’ 납득은 하지만 속은 시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곁에 누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 이야기를 듣고는 ‘그런가, 아, 그런 건가.’ 싶었다.
모두가 각자 나름대로 자기 자신을 붙들고 산다지만, 안간힘을 다해 붙들어도 쓰러지는 날이 있다. 속절없이 무너지고 쓰러지는 순간이 있다. 갑작스레 균형을 잃고 발을 헛디디는 순간, 무릎이 벌벌 떨리다 제자리에 주저앉게 되는 순간, 어지러운 탓에 휘청거리는 날에, 온 몸에 힘이 빠져 무작정 무너지고 싶을 때, 내 곁에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이었던가.
나는 이전부터 생은 홀로 견디어내야 하는 것이라 믿었고, 그 믿음은 아직도 여전하다. 하여 어떤 날에는 내 모든 사람을 마음에서 밀어내려고도 했다. 행여라도 약해질까, 혹시라도 내가 나를 쉽게 놓으려할까 싶어서 억지를 부린 적도 많았다. 하지만 혼자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한들 무력한 날들이 있었고, 그때 나를 잡아준 건 다름 아닌 내 곁의 누군가였다.
‘얼마나 멋진 사람이었나, 얼마나 값진 인연이었던가.’
도주벽이 심한 나는 종종 모든 걸 내던지고 숨어들지만, 결국 그런 나를 찾아내는 것도, 있을 자리를 내어주는 것도, 그리고 푹 쉬고 나면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도 전부 곁의 누군가였다.
올해도 이제 끝이 난다. 그간 나를 견디어주고 버티어주고, 밀어내고 외면해도 기다려준 사람들을 생각했다. 곁에 있어주었던 누군가들을 떠올렸다. 혼자서 하겠다고 고집부리는 것을 나무라지 않고 그저 곁에 있어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보내본다. 나를 이 세상에 붙들어준 모두에게, 올해도 내가 있을 자리를 내주었던 모두 덕분이었다.
앞으로도 나는 성가시고 모난 체하기를 즐기는 이상한 녀석이라 번거롭겠지. 쓸데없는 곳에서 예민하고, 괜한 것에 자존심을 세워대고, 무턱대고 고집을 부리는 일도 있겠지. 어쩌면 또 다시 도주벽이 도져서 무턱대고 끝으로, 밖으로 내달리거나, 구석진 어딘가를 깊이 파고 숨어들지도 모르겠다.
미리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런 나라도 내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놓아버리지 않을 누군가에게, 곁에 있어 줄 누군가에게. 그리고 만일 신이 있다면, 아니 설령 없다고 하여도 이렇게나 모자란 내 곁에 누군가를 보내준 그 섭리에 감사하고 싶다.
추신, 기도한다. 혼자서도 생을 견디어낼 수 있기를, 혹여 그렇지 못한 순간에는 곁에 누군가가 있기를, 그리고 결국에는 나 역시 누군가의 곁에 있어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