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된다.

허들링

by 서량 김종빈

끌어안다, 끌어안다, 끌어안다.


뭐라도 끄적이지 않으면 못 견디는 주제에 최근 한 달은 아무것도 못썼던 것 같다. 바쁘기도 했고, 지치기도 했고, 보통은 별 생각이 없었으니까. 대신, 대신이라고 하기는 뭐하다만, 그래도 대신, 얼마간 저 몇 글자를 떠올렸다. “끌어안다.” 도통 어디서 날아든 건지 모르겠다만 별생각 없다가도, 길을 가다가도,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중에도 난데없는 저 몇 자를 떠올렸다.


오늘 간신히 도둑가족이라는 영화를 구해서 봤다. 반년이 넘도록 기다려서야 볼 수 있다니 하고 섭섭함이 불쑥. 아니다, 지구 반대편까지 오는 것이 금세 될 리가 있다. 시간이 꽤 걸리는 게 당연하지.


영화가 상을 받았다는 소리도 들었고, 인터넷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좀 보였다.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로 만났다, 그 뒤로 그의 영화를 전부 다 찾아보면서 가족이란 뭔가 싶을 만큼 고민하기도 했다. 지금 와서야 좀 쑥스럽기도 하지만, 아무튼 간에 그랬었다.


딱히 영화이야기는 길게 할 생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 않나 싶다. 그냥, 엉망인 사람들, 무너진 사람들, 버려진 사람들이 가족이 되어 사는 이야기다. 나야, 영화 내내 눈물 나는 것을 참느라 꽤 고생했다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어떤 영화가 될는지. 섣불리 극찬도 않을까 한다. 그저 이 영화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다다르기를 바라는 것으로 마음을 다하련다.


어쨌든 바람은 그렇다 쳐도 마음은 솔직했는가 보다. 영화가 끝날 때 쯤, 나는 결국 애써 틀어막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영화 속에서 손을 잡아준다던지, 보듬어준다던지, 토닥여줄 때, 그리고 끌어안아줄 때, 그때마다 울고 싶더라니, 결국은 이 모양이었던 거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보며,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끌어안는다. 끌어, 안는다.’ 영화 속 어디 한 구석이 무너지거나, 내쳐진 사람들도 끌어안았다. 치사하고 몰염치하고, 손가락질 받던 사람들이었지만, 끌어안았다. 어린 아이가 다리미에 지져진 자신의 상처와 자신을 주운 한 여인의 다리미에 데인 상처를 번갈아 어루만진다. 영화 속 모두들 자신의 상처도 벅찰 텐데, 상처들을 끌어안았다. 영화 끝에 나는 ‘어쩌면 끌어안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곤란했다. “나는 모나기도 모나고, 겁도 많아서, 사납기 그지없는 인간이다.” 누군가를 끌어안아야 할 때마다 이런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는 꽤나 엉망이라서 끌어안는 일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어떤 날은 내 나약함을 자랑인양 내보이며 더 이상 상처가 늘어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소리까지 해대었다. 그러면 대부분의 끌어안는 일은 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그게 편했다.


맞지 않는 사람도 많고, 싫은 사람도 많은 것이 내 삶이라서 으르렁거리는 것이 다반사였던 삶이었다. 다른 건지, 틀린 건지도 잘 모르는 주제에 조금이라도 틀렸다 싶으면, 물어뜯으려고 허연 이를 드러내고는 했다. 그래도 ‘나는 성자도 군자도 뭣도 아니니까.’ 라는 근사한 변명이 있어서 그때마다 어떻게든 되었다.


근데, 곤란하다. 이제 더는 그런 변명이 스스로에게 통하지 않을 것만 같아서 그게 참 곤란하다. 끌어안는 일은 그다지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은 것만 같아서 말이다. 좀 짧은 두 팔이어도 감싸 안는 것은 어렵지 않아보였고, 한 폭정도의 가슴이면 온기는 충분해보였다. 마음은 전부 다 짊어질 필요도 없어서 한 줌이면 족했다. 엉망진창이 나라도 그 정도는 있어서, 더 이상 끌어안을 수 없다고 변명할 없게 되었다.


나의 아부지와 엄마는 세상사람들이 보자면 그다지 대단한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 잘난 맛에 오만한 나를 끌어안았다. 아니, 지금까지도 서른이 훌쩍 넘은 아들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나의 별 볼일 없는 친구들은 사납고 소란할 뿐인 나를 끌어안았다. 이제 와서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내가 무턱대고 짖어댈 뿐인 시절마저도 나는 누군가에게 안겨있었구나.


바쁜 것도, 가난한 것도, 약하다는 것마저도 변명이 될 수 없게 된 밤이다. 그저 곤란하고, 곤란하조금은 뭉클한 밤이다.


추신, 구태여 세상 모두를 다 끌어안을 것 까지는 없으니, 그저 내 곁의 사람들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내 상처가 그의 상처와 함께 아물어 가기를 바란다. 살아있는 동안, 그만한 온기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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