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기를, 마치 당신처럼요.

도미니카공화국 한국어교육 배은정

by 서량 김종빈

어떤 날, 어느 책에서 본 구절 하나가 마음 한 구석에 가만히 내려앉았다. "적당함의 미학"

적당한 자신감, 적당한 가난 또는 적당한 풍요로움, 적당한 좌절감, 적당한 성실, 적당한 슬픔, 적당한 기대 또는 적당한 체념, 그런 적당한 어떤 것들.

이런 것들은 인생에 깊이를 더하고, 그늘을 드리우며, 좋은 맛과 향기가 나는 존재로 만들어 준다고 했다.


나는 이런 적당한 기대와 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이곳에 왔다.


봉사자라는 거창한 수식어는 내게 낯 뜨거웠다.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한국인으로 태어나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 재능을 조금 나누어 주고 오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는가 싶어서 말이다.


오히려 나에게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이었다.

2년 전 볼리비아의 수크레라는 작은 마을에서 수줍게 다가와 한국말로 인사하는 소녀 3명을 만났다.


'남미 여행을 하며 숱하게 들어왔던 치나가 아니라 "안녕하세요?"라고?' 관심 없던 한류에 눈물 나게 고마워지던 순간이었다.


사실 언어라는 소통의 매개체는 어떤 때는 매우 중요하다가도, 어떤 순간에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나는 그들에게 단지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말 한마디를 들었을 뿐이었지만, 그들의 눈빛과 미소는 나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의 말들을 숱하게 내뱉어 내고 있었다.


2년이나 지났는데도 그때의 따뜻함이 느껴질 만큼, 그 관심과 애정은 나에게 뜨거운 "무언가"였다.

이후 그 기억을 더듬어 이곳에 왔다. 애초에 대단한 것을 계획하지는 않았다. '한글과 한국문화를 좋아하지만, 한국인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망설이는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 주자. 그날의 나와 같이.' 그리고 그 작은 결심이 나를 지금 여기까지 조용히 이끌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작은 결심이라 해도, 그건 생각보다 확고했고 너무 단단했다. 혹여라도 작은 충격에 두 동강 나버릴까 두려웠다.

그래서 몇 번이고 매만지며 소원했다.


말랑해지기를, 몽실해지기를. "많이 기대하지 말자. 많이 계획하지 말자. 그저 그들과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오자." 그렇게 소원했다.

이곳에서 나의 나날은 예상했던 것만큼 적당히 힘들었다. 또 어떤 날은 적당히 행복했으며 적당히 불안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적당한 단단함으로 살아간다.

너무 물러져 녹아내리지도, 너무 단단해 부러져 버리지도 않을 만큼 적당히.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정도의 적당한 단단함.


하지만 적당함을 유지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중심을 지키는 일은 시시때때로 이쪽, 저쪽에 휘둘리고 말아서 참으로 어렵더라.

그중에 마음이라는 녀석이 제일 문제라서, 치나라는 말을 질리도록 듣고, 자주 거절당하고 오래 기다리고, 하루 종일 나쁜 감정들과 줄다리기를 하다가 돌아온 날이면 ‘괜찮다 괜찮다.’ 되네이는 괜찮지 않은 나를 발견하는 날도 숱하게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어려운 날들 속에서도 마음이 결국 다다르는 끝은 늘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어려운 날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듬더듬 ‘안녕하세요? 선생님’이라고 웃으면서 인사해주는 나의 학생들의 존재가 감사했다.


매번 흔들리는 마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그들과 나눌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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