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는 지인들과 연락을 하다 보면, 그들이 나에게 항상 묻는 것이 있다. “너 한국 언제 오니?, 언제 거기 갔니?, 다시 돌아오기는 하니?, 얼른 와서 소주 한 잔 마시자!”
“도미니카 공화국”, 이 나라에 내 몸을 맡긴 지가 벌써 1년이 넘었다. 이제는 이곳에서 지내온 시간이 지낼 수 있는 시간보다 더 많아진 거다. 아직까지는 이곳을 떠날 아쉬움보다 돌아갈 기대감이 내 안에 더 도드라져있다만, 정작 돌아갈 날에는 어떨 런지 모르겠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적잖은 사건들이 있었다.
1. 먼저는 이곳에 오자마자 망고 알레르기로 인한 가려움이 모기 때문인 줄 알고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가 보름을 고생하며 있던 기억이 하나,
2. 둘째로는 온 지 두어 달쯤 되었을 때 아메바성 이질로 인해 병원을 가게 되었는데 현지어 실력이 너무 부족하여 의사가 답답한 나머지 에스빠뇰 공부 좀 하라고 나를 마구 혼내었던 기억이 또 하나, 내게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 아프면 안 된다고까지 했는데, 그게 또 참 서러웠다.
3. 셋째로는 체육관으로 운동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어떤 경비원이 내게 총을 겨누며 “나랑 싸우자, 내가 너 이길 수 있어.”라고 하며 저급한 장난을 걸었던 기억이 또다시 하나, 덕분에 나는 무서워서 며칠은 밖에 나가지 못했었다.
4.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봉사활동물품으로 구매한 프린터에 문제가 있어서 환불을 요구했는데 가게에서는 현금이 아닌 쿠폰으로 환불해주고는 나 몰라라 하던 기억이 또 하나.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또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었다. 얼마나 서럽던지, 내가 니들에게 돈을 달랬냐? 그냥 환불해주는 게 그렇게 어렵냐, 이놈들아.
처음 이런 일들을 겪었을 때는 서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해서 눈에 촉촉하게 땀이 났었다. 나이 서른을 앞두고 눈에 땀이 나다니,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 하지만 그것도 처음이 두 번이 되고 세 번, 네 번이 되니 지친 나머지 눈에 땀도 나지 않더라. 왜 땀을 너무 흘리면 나중에 땀도 안 나오는 그런 거랑 비슷한 거지. 지금껏 지내왔던 삶과 너무 다른 문화에 적응하느라, 혹은 버티어내느라 많이 지쳐 있었던 거다. 노파심에 다시 말하지만 눈물이 아니라 눈에 땀이 났었다.
하지만 이토록 내 나름에는 처참한 사건들이 많았음에도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아마도 나와 함께 같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낙천적이고 유쾌한 면면들을 생각하면 서럽다가도 “에이, 그냥 넘어가자.” 싶으니까 말이다. 나는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 두 명을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나는 말이다. 말이 많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게다가 굉장히 외향적이다. 하지만 내 딴에는 검소한 삶을 추구하며, 외향적인 것에 비해 눈치를 많이 본다.(아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나를 직접 만나보면 금세 납득하시리라. 그러니 부디 이 대목은 따듯한 마음으로 넘어가 주시길.)
하지만 이곳에서 나와 함께 하는 두 사람은 다르다. 일단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래서 3명이서 함께 모여 있으면 말은 내가 다한다. 그리고 내성적인 편은 아니지만 이 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편해지는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다.(물론 나에 비해 상대적으로.) 하지만 나에 비해 굉장히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게 또 이 두 사람이다.
<여기서 나의 매우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인물 설명을 하자면,
G군 : 가끔씩 다 같이 모일 때가 있는데, 모임이 끝나고 나면 항상 혼자 바쁜 사람. 자리 뒷정리에 누가 잃어버리거나 떨어뜨린 물건이 없나 찾고 있다. 꼼꼼하고 솔선수범이 몸에 배어있달까. 하지만 사람이 장점만 있을 리가 없지. 가끔 자기 마음에 드는 한 주제에 꽂히기 시작하면 반드시 해버리는 집념을 보인다.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뭐든지. 무섭도록 우직하달까.
다음은 P군 : 나보다 더 검소하다. 식도락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데, 본인 말로는 어디에 돈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농담 삼아 우리 사이에서는 “대출은 P에게”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확실히 하는데 확실한 마이 페이스가 있달까, 사람이 좋아서 자기에게 불편한 일마저도 잘 웃어넘기지만 분명한 마이 페이스가 있는 친구다.>
우리 세 명은 이 기묘한 조합으로 종종 여행을 가는데, 그때 이 성격들이 각기 활약을 하는 통에 여행은 어마어마해진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한 번은 함께 여행 중에 내가 돈이 부족해서 P군에게 돈을 빌렸는데, 이때 P군은 흔쾌히 돈을 빌려주었다. 자기가 집으로 돌아갈 버스비까지 털어가며 말이다. 나는 요즘도 생각한다. 아니, 확신한다. 어느 날 문득 생겨난 미니멀리스트라는 단어는 오로지 P군을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또 내가 P군에게 이렇게 돈을 빌리고 있는 중에 우리의 G군은 묵묵히 마트 쇼핑카트에 물건을 담고 있다. 사실은 자기도 돈이 부족하면서 말이다. 장보는 모습은 여유가 넘치다 못해 스웩이 폭발할 지경, 물건을 집는 손동작 하나가 분명하고 확실하다. 물론 그것을 다 계산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게 돈을 빌려준 탓에 집에 갈 버스비조차 없던 P군을 위해 또 G군이 자신의 돼지저금통 배를 갈랐다고 들었다. 대체 우리의 관계는 어째서 이토록 채무가 가득한 건지. 쯧쯧쯧.)
이런 식의 우리다 보니, 여행은 종종 웃지 못할 상황까지 가는데(정말 웃지 못할 상황, 이를테면 셋 다 차비가 없어 외딴곳에 내버려진다거나 같은 상황 말이다.) 신기한 건 말이다, 그럼에도 즐겁다는 것. 가던 차가 멈추고 가던 길이 막히고, 외딴곳에 내버려진들 유쾌하기만 한 것이 참 기묘한 일이다. 정말, 기묘한 조합에 기묘한 유쾌함이다.
이렇게 나와 다른 두 사람의 막무가내의 유쾌함을 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서러운 것들도, 답이 보이지 않는 것들도, 가끔 눈물이 날 지경의 일들마저도 사실은 별일이 아닐지도, 그냥, 살다 보면 정답이 없는 일들이 훨씬 많은데, 이게 맞고 저게 맞고, 그 속에서 나는 맞는 건지 틀린 건지 전전긍긍하는 것이 우리를 별일 아닌 것에도 서럽도록 만든 것일지도.라는 생각.
이곳에 와서 나는 서러운 일들이 참 많았고, 여행은 때때로 막막하기까지 했지만, 사실은 별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별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웃으면 어떻게든 되는 별일이 아니었다. 비록 정답은 아니어도, 기꺼이 나와 함께 온 곳을 내디뎌가며 함께 답을 찾아 준 G와 P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이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