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우우웅~” 둔한 소리를 내며 다가온 트럭이 잠시 앞에 멈춰 섰다가 또다시 “부우우웅~” 하며 큰 엔진 소리 뒤에 두고 지나간다. 시꺼먼 연기를 피하려 얼굴을 돌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아마 저 트럭의 매연은 이미 내 코 속, 입 속에 가득하겠지.’
"아!" 따끔하며 아파서 보니 이번에는 흙모래다. 넋 놓고 있다 보면 차가 지나가며 밟은 흙모래들이 바람을 타고 눈이며 입으로 마구 튀어 든다. 미간을 구겨가며 한숨을 내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마신 흙의 양이 얼마나 되려나…’
이곳 파라과이에서 나는 집과 일터의 거리가 멀어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 했다. 교통사정이 좋지 않은 이곳에서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는 동안, 나는 길에서 속절없이 기다리기도 해 봤고, 화도 내보기도해봤고, 나중에는 어이가 없어서 웃기까지도 했다. 훗날, 이 지긋지긋한 경험이 내게 어떻게 남을지 아직은 잘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제는 이 곳에 완전히 녹아들어 불편한 것들이 더 이상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지금, 어렴풋하지만 알겠다. 아직은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게 어떤 의미들이 머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처음에 마주했던 난감함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비가 많이 오는 봄철이었다. 마을에 딱 한 대밖에 없는 딱 보아도 나보다 곱절은 나이가 많아 보이는 버스가 제때 오지 않았다. 물론 제때라고 해도 제때가 아니지만 아무튼. 한국에서라면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꼬박꼬박 제시간에 와야 하는 게 대중교통이었거늘, 파라과이 촌구석에서는 그렇지가 못하다. 심지어 버스가 오지 않는 이유도 다양하다. 하필 또 그날 아침, 나는 바보처럼 비가 많이 오는데도 굳이 출근하겠다고 나섰다가 신발을 흠뻑 적셔서 이미 뿔이 나있던 터였다. 눅눅한 신발을 견디어내며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이제 드디어 집에 갈 수 있게 되었는데 버스가 오지 않으니 마구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앞으로 2년 가까이 이딴 버스로 어떻게 출퇴근을 하라는 말이냐’, ‘내 코이카 생활은 벌써부터 위기인 거냐’ 하며 속으로 꿍얼꿍얼, 보면 그다지 비도 많이 안 오는데, 비를 이유삼아 핑계도 좋은 버스기사가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한참을 아무도 없는 공원에 앉아서 혼자 씩씩거리며 서러워하다가 결국 기관 동료를 불렀다. 동료의 집에서 따뜻한 차를 얻어먹고 서러운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고, 오늘 안에 집은 가야 하니 택시를 타고 큰길까지 나와서 다른 버스를 탔는데, 이번에는 내릴 곳을 3km나 지나 내리게 된 것이다. 우산은 없지, 눅눅한 신발은 다시 또 다 젖어서 그대로 한참을 걸었었다. ‘오늘은 그냥 서러워야 하는 날인가 보다.’ 또 혼잣말을 꿍얼꿍얼, 오지 않는 버스 때문에 그때는 그랬었다, 화내고 서러워하고 짜증내고. 몇 번이고 도시 시장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볼까까지 생각했었다.
그 뒤 어느 정도 적응을 했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이제는 버스 기사의 전화번호도 알고, 안 오면 왜 안 오냐고 메시지도 보내며 나름 씩씩하게 지낼 때였다. 무더운 날씨, 쨍쨍한 햇볕 아래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날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길래 버스기사에게 ‘왜 안 오냐?’고 연락을 했더니 오늘은 자기가 차를 고치고 있어서 운행을 못한단다. 마을에 단 하나뿐인 버스가 “수리 중”이라는 데 어쩌겠는가? 그래서 나는 별 수 없이 택시를 불러 타고 가는데, 마을 중앙을 지나는 길,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야외테이블에서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고 있는 버스기사. 이쪽에서 “빵~~” 하고 클랙션을 누르니, 그는 나를 보고 민망한 듯 후다닥 도망간다.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화를 낼 마음도 들지 않아서 그냥 웃고 말았다.
한동안은 문제없이 시간 맞게 잘 오는가 하면, 또 한동안은 이틀 걸러 한번 꼴로 버스가 오지 않아서 나는 그때마다 길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수많은 차들이 먼지를 내며 내 앞을 지나갔다. 어떨 때는 내가 목을 빼고 그 주황색 버스가 오고 있나 보고 있으면 동네 아저씨들은 내가 불쌍했는지, “버스가 아까 지나가더라.” 하며 알려주기도 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을 때는 곁에 와서 말동무를 해주시기도 했다. 어쩌면 정말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더 이상은 버스가 오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게 되었다. 땡볕 아래 흙먼지 풀풀 날리는 길 위, 비 쏟아져서 우산이 소용없는 진흙 길 위, 그러려니 하는 내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조금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런 기다림들 속에서 내려놓음을 배우고 있다. 내가 생각하던 것, 알고 있던 것과 다르면 단번에 ‘이건 아니지!’라며 성급히 화내기보다는, 그냥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게 내 “이너피스”에 더 이롭다는 걸 알았으니까. 게다가 내가 그냥 ‘버리는 시간’이라고 여기는 시간들 속에도 때때로 소중한 인연이 찾아오기도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마음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지나쳤던 풍경이면 인연들이 있었다. 기다리는 일은 내게 그런 풍경도 인연도 다시 한번 보라고 했다. 어느 시구처럼 다시 보아야 아릅답다며, 그저 지나치지 말라며 말이다. 길 위에서 어떤 날이면, 나는 감사하는 법을, 감탄하는 법을, 그리고 “그래도 괜찮아.”지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아직도 여전히 그냥 보내는 시간이 아깝지만, 그 속에 있을 의미를 기대해본다. 지금은 모르지만 나중에는 그랬구나 싶을 의미들을 말이다. 이렇게 몇 자 적다 보니 이만큼이나 적응한 내게는 상이라도 주고 싶네.
앞으로 또 무더운 날이 시작되면 물가에 놀러 가느라 오지 않는 버스기사를 나는 하염없이 기다릴 테지. 그리고 나는 그 시간 속 위로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마셔야 하겠지만, 이제는 괜찮을 것 같다. 기다리다 보면 뭐라도 올 테니, 그걸로 되었다.
글쎄다. 내가 마신 흙의 양은 얼마나 될까. 내가 마신 매연은 또 얼마나 되며, 길에서 지나쳐 보낸 시간은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속에서 마침내 내가 내려놓은 내 영혼의 무게는 또 얼마나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