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언제나 집에 돌아갈 때까지가 여행이라지요.

수채화

by 서량 김종빈

주변이 각자의 이야기로 소란스럽다. 모두 웃고 떠들며 온통 떠들썩하다.

"어제 저녁 정말 맛있었는데, 아침은 별로더라."
"딸, 여행 중에 아빠한테 연락했니?"
"에이, 브라질인하고 볼리비아인은 다르지~."
엿들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짧은 스페인어와 더 짧은 영어로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다들 거짓말 같은 풍경 속에 있었다. 그런데 그 풍경을 뒤로하고 다음 여행지로 떠나는 모두들은 대단했던 풍경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와, 정말 풍경이 멋지지 않았어?" 라던지, "나는 그 빛깔에 감격했잖아!" 같은 이야기 말이다.

물론 다들 그 풍경을 잊었다거나, 감흥이 없었던 것은 아닐 거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들은 대단한 풍경이나 감격한 마음만으로 다 채울 수는 없었던 거다.

오히려 여행의 대부분은 소소하고 별것 아닌듯한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밥이 맛있다거나, 가족이나 친구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생각해보면 대단하고 강렬한 것들, 아름답고 거대한 것들만으로 채워지는 여행은 없었다. 그런 것들은 너무 크고 짙어서 시간의 수많은 틈새를 채우기에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소소한 이야기들은 여행의 틈새를 메우고 이어가며 자칫 있을지도 모를 여행의 헛헛함을 채우고 있었다.

때때로 여행이 얼기설기 되었던 것은 크고 짙은 것들만 쫓다 보니 그리되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여행에는 순간의 열기가 있다. 하지만 여행이 기억되고 추억으로 오래도록 남게 되는 것은 일상의 잔열 덕분일 거다. 순간의 열기가 지나간 뒤 남은 일상 말이다. 밥을 먹는다거나, 사람들과 수다를 떤다거나하는, 여행 중에도 여전한 일상들.

순간의 열기가 없어서야, 잔열도 남지 않겠지. 하지만 순간의 열기만으로는 어떤 여행도 금세 휘발되고 말 테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여행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가 보다. 그리고 그 어디를 다녀왔다고 한들 우리는 소소하고 가까운 이야기로 웃는가 보다.

나와 당신의 여행이 언제까지고 소소함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 우리의 삶에 타오르는 유화가 몇 장 걸려있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보다 좀 더 많은 수채화가 선선한 풍경으로 걸려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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