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이 전염되고, 불안이 전염되고, 이 또한 역병이고.
인심
"야, 우리 애가 이제 좀 커서 뛰어 댕기기 시작했거든, 그래서 어제 아랫집에 음료수를 사들고 갔어. 아랫집에는 노부부가 사시는데, 층간소음 때문에 죄송해서 어떻게 인사를 좀 드려야 할 것 같더라고."
친구는 아침부터 내게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조금 상기된 문자로 풀어놨다.
"근데, 아침에 출근하려고 보니까 집 앞에 편지가 하나 놓여있더라. 덜컥 겁이 나더라. 우리 집이 너무 시끄러웠나, 인사를 드리기는 했는데 너무 얄팍했나, 별 생각이 다 들더라. 그래서 편지봉투를 열어서 읽어봤거든. 이렇게 쓰여있더라."
"... 저희 때문에 아이 못 놀게 하시지 마시고, 그냥 놀고 싶은 대로 놀게 하시면 됩니다... 저희는 아이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길 바랄 뿐입니다..."라고 편지에 쓰여있었다며 친구는 뜨끈해진 마음을 내게 고백했다.
나도 괜스레 덩달아 뜨끈해진 마음으로 친구에게 "잘했다. 잘했어."라고 문자를 보냈다.
요즘 마음이 꽤나 불편했었다. 역병이 창궐하여, 사람이 사람을 삼키고 짐승이 사람을 삼키는 모양새가 어지러웠다. 날 선 예민함과 갈피를 못 잡는 미움, 으르렁대는 사람들, 벌벌 떠는 사람들, 그 가운데서 미움에 휩쓸려버린 나도 있었다.
가슴에 적의가 차올라서, 떳떳하게 스스로를 사람이라 자신할 수 없게 되면 어쩌나 하고 겁도 났었다. 그리고 다들 그렇게 되면 어쩌나 했었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얼마나 병이 퍼지고, 얼마나 죽었는지를 보고, 얼마나 미워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일상이란 지독하지 않은가. 지난밤에는 사람과 금수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마음을 뒤적거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침에 친구가 보낸 편지하나가 어지러운 마음을 더 멀리 가지 말라고 붙들어준다. 친구가 자랑스럽다. 내내 나와 바보짓하며 놀기 바빠 모자란 줄 알았는데 이미 저만큼 앞서 가는 것 같다. 역시 아버지가 되면 다르구나.
노부부의 마음 씀씀이도 참으로 감사하다. 사람과 금수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아직도 더 마음을 뒤적거려봐야겠지만, 그래도 노부부께서 직접 써 주신 편지로 안심했다. 사람이 금수보다 못하지는 않은 것만 같아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어서 미움이 그 힘을 잃기를 바란다. 우리가 결코 사람의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