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주인장의 오래된 상처

by 지구 외계인

밤비가 아닌데 지붕에서 물방울 소리가 났다. 그물에 걸린 빛들이 낮게 흔들리고, 병과 돌판 사이의 온도는 오늘도 미지근을 유지했다. 문은 닫혀 있었고, 간판 불은 꺼 둔 채였다. 나는 접수병의 라벨을 한 장씩 정리하다가 물었다.

“오늘은… 조금 조용하네요.”

주인장은 바늘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바늘끝에 묻은 빛가루가 사라지지도 않고, 더해지지도 않았다. 그는 잠시 돌판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마치 체온계를 재듯 가만히 있었다.

“조용할 때가 있어야 손을 들여다보죠.”

“손이요?”

그가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 손은 남의 것만 고치는 데 익숙했습니다.”

그 문장이 방 안에 내려앉을 때, 그가 서랍에서 회색 양복 조각을 꺼냈다. 어깨선의 희미한 상처, 어제와 다름없었다. 다만 오늘은 조각 옆에 접힌 사진이 있었다. 네 귀퉁이가 마모되어 종이결이 부드러워진 오래된 사진.

“보여 주셔도… 돼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 속에는 젊은 남자 둘이 나란히 서 있었다. 하나는 지금의 주인장과 닮았고, 다른 하나는 웃는 입꼬리가 더 올라간 얼굴이었다. 두 사람 사이, 작은 표지판에는 ‘공유 작업실’이라는 글씨가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저와… 친구였습니다. 아니, 형제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 함께 배웠고, 함께 수선했죠. 그때 우린 ‘빨리’의 유혹을 자주 받았습니다. 누가 먼저 고치느냐, 누가 더 빨리 결과를 내놓느냐. 손님이 많았고, 우리는 젊었으니까요.”

그는 사진을 접어 다시 양복 조각 밑에 깔았다.

“큰 의뢰가 들어왔어요. 한 아이의 수술 일정. 부모는 ‘행운을 앞당겨 달라’고 했습니다. 줄을 서 있던 다른 가족들도 있었어요. 우리는 그날 밤, 고쳐서는 안 되는 곳에 손을 댔습니다. 순서를 바꾸고, 시간을 조금 밀고 당기고, 아이를 먼저 통과시키는 길을 만들었죠.”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앞에서 짧게, 뒤에서 길게. 그는 계속 말했다.

“아이의 수술은 성공했습니다. 정말 다행이었죠. 그날 우리는 서로 포옹했고, 부모의 손이 우리 손을 붙들었어요. 그런데… 다른 쪽 줄에서 하나가 빠졌습니다. 누군가의 밤샘 기다림, 누군가의 마음의 준비, 누군가의 ‘오늘이면 괜찮다’가 작은 균열을 일으켰어요. 결과는… 우리 둘 다 알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 친구가 말했어요. ‘다음에는 더 정교하게 하자. 아무도 모르게.’”

그는 바늘을 들어 빛에 비추었다. 바늘이 눈물처럼 가늘게 빛났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또 그 다음. 그렇게 몇 번을 했습니다. 누군가를 앞당기면, 누군가가 밀렸죠. 우리는 ‘대가’를 분명히 알았지만, 그때의 우리는 ‘감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가 내 몫의 행운을 몰래 당겨 갔어요. ‘너는 늘 양보했으니 오늘은 내가 먼저 불러 줄게.’ 농담처럼, 호의처럼. 그날 나는 살았고, 그는… 빈자리를 채우다가, 그 자리에서 멈췄습니다.”

나는 말이 막혔다. 방의 온도가 미지근에서 서늘로 미끄러졌다. 그는 회색 조각의 어깨선을 손끝으로 쓸었다.

“그때부터 내 옷은 못 고쳤어요. 고치려 들면 바늘이 떨렸고, 실이 자꾸 끊어졌습니다. 내 상처에 손을 대면, 내가 밀어낸 얼굴들이 너무 또렷했어요. 내 손은 남의 것만 고치는 데 익숙했습니다. 내 몫의 상처는 늘 ‘나중’이었죠.”

“그런데 왜… 이 가게를 열었나요?”

그가 천천히 병과 돌판을 번갈아 보았다.

“나눌수록 온도가 커지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빨리’가 아니라 ‘함께’를 연습하면, 빈자리가 덜 크게 생긴다는 것도. 하지만 죄다 고쳐지진 않아요. 그래서 장치를 ‘오늘’이라 부릅니다. 이름을 붙이지 않고, 팔지 않고, 기록을 남긴다 해도 글자에 값을 매기지 않죠.”

그는 사진을 꺼내 다시 내게 보여 주었다. 이번에는 사진 뒷면. 흐릿한 연필 글씨가 있었다.

먼저 부르지 말자. 대신, 먼저 듣자.

“그게… 친구의 글씨예요?”

“네. 우리가 작업실 문에 붙여 두었던 문장. 그런데 우리는 자주 어겼습니다. 결과가 너무 아름다울 때는, 문장을 잊었어요.”

“그래서 ‘먼저 부름’은 돌판이 되었군요. 잊지 않으려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돌판은 무겁습니다. 들 수 있을 만큼만 무겁죠. 그래야 매일 자리를 바꿀 수 있으니까. 나는 매일 돌판을 옮기며 다짐합니다. 누군가를 먼저 부르기보다, 먼저 물어보자고.”

창밖이 조금 어두워졌다. 간판 불은 꺼져 있었지만, 골목의 불빛이 실금처럼 흘렀다. 주인장은 접수병에서 오래된 라벨을 한 장 꺼냈다. 글씨가 거의 지워진 라벨. 빛에 비추니 겨우 읽을 수 있었다.

오늘의 이유 — 내 손이 떨리는 이유를 잊지 않기.

“그날 이후 처음 쓴 라벨이에요. 손이 떨려서 ‘이유’를 세 번이나 적었습니다. 하나는 번졌고, 하나는 찢어졌고, 마지막 하나만 병에 남았죠. 그게 여전히 여기 있어요.”

나는 라벨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종이가 따뜻했다. 오래되어 얇아졌지만, 온도만큼은 남아 있었다.

“그럼 오늘… 이 상처에 한 땀만 더 해 볼까요?” 내가 낮게 제안했다. “꿰매지 말고, 지나가기만.”

그는 잠깐 나를 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그가 늘 하던 대로 준비했다. 바늘귀에 실을 통과시키고, 돌판을 수선대 한가운데로 끌어당기고, 병을 옆에 붙였다. 그리고 장치의 원을 손끝으로 한 번 쓸었다. 모래시계는 뒤집지 않았다. 시간을 앞당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왜 필요한지, 먼저 말해 주세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가 답했다.

“비우고 남은 자리에도 숨이 든다는 걸, 내 옷이 먼저 기억하게 하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늘을 들고 회색 조각의 어깨선 위를 지나갔다. 실이 한 번, 아주 작은 마찰음을 냈다. 그 소리에 맞추어 그가 낮게 속삭였다.

“미안해.”

“누구에게요?”

“모두에게. 그리고 나에게.”

바늘이 천을 빠져나왔다. 나는 실을 자르지 않았다. 그의 방식대로, 내일 누군가 한 땀 더 얹을 수 있게 조금 남겨 두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앞에서 아주 짧게.

“조금 가벼워졌네요.”

“온도가… 돌아왔어요.” 내가 말했다. 병 벽에 엷은 김이 맺혔다. 돌판 글자가 또렷해졌다.

먼저 부름

그는 사진을 접어 조각 밑에 다시 넣었다. 그리고 칠판을 내게 건넸다. 잉크펜으로 나는 한 줄을 썼다.

오늘의 이유 — 내 상처를 ‘오늘’로 옮긴다.

그는 그 문장을 읽고, 조용히 덧붙였다.

“오늘이 될 때만, 어제의 죄책감이 내일의 다짐으로 바뀝니다.”

문이 아주 작게 울렸다. 장치 위 그물에서 빛 한 올이 내려와 바닥의 원을 스치고 병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돌판으로 돌아왔다. 길을 제대로 기억한 빛의 움직임. 주인장은 작은 종을 꺼내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오늘은 당신이 울릴 차례예요. 아주 작게, 귀에만.”

나는 종을 움직였다. 소리가 들렸는지, 들렸다고 느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얇은 떨림. 그러나 확실히 방 안의 온도가 한 칸 올라갔다. 그는 어깨를 돌리며 웃었다.

“내 손은 남의 것만 고치는 데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 손으로 내 옷에 첫 땀을 얹게 해 준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요.”

“저야말로요.” 내가 답했다. “당신이 말해 주지 않았다면, 나도 내 상처를 ‘오늘’로 옮길 생각을 못 했을 거예요.”

우리는 가게를 천천히 정리했다. 간판 불은 켜지지 않았지만, 안은 충분히 환했다. 병의 김, 돌판의 윤, 그물의 숨, 원의 결, 실의 가벼움. 문을 잠그기 전, 그는 접수병에 오래된 라벨 옆으로 새 라벨을 한 장 더 넣었다.

오늘의 이유 — 먼저 듣고, 천천히 고친다.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 친구… 언젠가 이야기해도 될까요? 장치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는 날, 사람들에게.”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말하지 말고, 이유만. 우리 둘이 어겼던 문장을 꼭 함께.”

우리는 동시에 그 문장을 따라했다.

“먼저 부르지 말자. 대신, 먼저 듣자.”

종이 아주 맑게 울렸다. 내 귀에만, 그의 귀에만. 골목 바람이 문틈에서 한 번 숨 쉬고 지나갔다. 오늘의 온도는 느리고 충분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주인장의 상처는 ‘완치’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오늘’로 계속 옮겨질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내일도 한 땀, 누군가가 지나가기만 할 수 있다면.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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