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학창시절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단순히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낚시 이야기인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된 후로 그 책을 다시 읽었을 때는 한 줄 한 줄의 의미가 새롭게 와 닿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똑같은 책을 읽어도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봤을 때는 드는 생각이나 감정이 달랐습니다. 그 때 나는 어떤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는 자신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독서를 통해 무언가를 배울 때에도 자신의 경험이 풍부할수록 유리할 것입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지나온 경험 속에서 자신이 놓친 교훈을 발견한다는 말과도 유사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책에서 작가가 전달하려는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지의 여부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러한 경험이 없다면 상상력이 뛰어나야할 겁니다.
이런 원리가 단지 책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음악, 그림 등 대부분의 예술 분야를 비롯해 예술가의 작품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가 작품을 창작할 당시에 느꼈을 기분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별한 직후에 이별과 관련된 글이나 노래 가사, 영화에 우리가 더욱 몰입하여 공감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원리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자신이 어떤 예술 작품들을 좀 더 깊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예술가의 생애를 살펴보는 것도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그런 행동은 마치 노련한 사냥꾼이 땅 위의 발자국 혹은 배설물의 형태를 보고, 동물이 그곳을 지나갔던 시간과 도망친 방향을 알아내려는 시도와 비슷합니다. 만약 자신에게 그러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동물의 배설물은 단순히 길바닥에 떨어진 똥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위대한 화가의 그림일지라도, 그가 창조의 순간에 불어넣었을 입김과 미세한 떨림을 감지할 수 없다면, 그저 종이에 물감을 덧칠한 것에 불과하게 됩니다. 결국 작가가 쓴 책이 자신의 인생을 바꿀 단초가 될지, 아니면 두꺼운 종이 뭉치에 불과하게 될지에 대해선 독자의 눈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울리는 예술 작품을 접하게 된다면, 그 예술가의 정신과 연결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보다 좀 더 완전한 존재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우리로 하여금 정신적인 힘을 불어넣어주고, 그러한 자세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거라 믿습니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말로 표현할 줄 몰랐던 것을 떠올려 내는 과정이다.” 플라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