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세계 속으로
♡ 한 달 살기 시작
역시 허리도 엉덩이도 안 아픈 곳이 없다. 비행기를 오래 타는 것은 아무리 여러 번 겪어도 적응이 안 된다.
마닐라에 도착해서 환승시간까지 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져서 화장실도 다녀오고 몸도 좀 풀어 보았지만 다시 이어지는 싱가포르까지 4시간의 비행은 마냥 즐겁기만 한 경험은 아니었다.
말레이시아의 최남단에 있는 도시, 조호르바루에 가기 위해서는 조호르바루와 다리 하나로 연결된 섬나라 싱가포르의 창이공항을 이용해야 한다. 창이공항에서 조호르바루에 가기 위해서는 다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여를 달려서 싱가포르 북쪽에 위치한 우드랜드 출국장에 도착해서 출국심사를 마치고 조호르바루로 가는 버스를 다시 타고 다리 하나만 건너면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다.
조호르바루에 도착해서 입국장을 통과하면 드디어 말레이시아에 들어서게 된다.
숙소를 찾아가는 길도 초행길인데다가 날은 어둡고 짐이 많아서 다들 많이 지쳐있다. 다행히 호스트가 셀프 체크인 하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줘서 숙소에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아 다행이다.
숙소에 들어오니 저녁 8시.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까지 무려 6시간이나 결렸다. 그동안의 이사중에는 가장 힘든 이사였다.
조호르바루에서 한 달 살기를 결정한 우리는 이 숙소에 있는 기본 생필품들을 확인하고 새로 구입해야 할 물품들이 무엇인지 파악해 보았다.
우선 급하게 필요한건 어댑터(일명 돼지코)다. 우리가 가지고 다니던 어댑터와 스위스에서 구입했던 어댑터는 이곳의 플러그와 맞지를 않아서 당장 핸드폰도 충전할 수가 없다. 그리고 숙소에 냄비가 하나밖에 없어서 한 달 동안 사용할 저렴한 냄비도 하나 필요했다. 물론 세탁기용 세제 같은 기타 등등의 물건들도 당연히 필요했다.
다행히 숙소주변에 대형 마트가 있어서 필요한 생필품들을 구입하러 가보았는데, 제일 중요한 어댑터가 없다. 다른 마트를 검색해서 찾아가 보아도 그곳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원하는 어댑터는 어디에 있을까?
한참을 검색한 끝에 택시를 타고 조호르바루에서 제일 큰 마트로 갔다. 다행히 이곳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전부 구비되어 있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택시를 탔는데 마트를 찾아 갈 때와는 택시비가 다르다. 물어보니 일방통행을 피해서 길을 돌아 가야해서 비싸다는데 내 생각에는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일부러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계 어느 곳이나 외지인에 대한 바가지는 어쩔 수 없나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다들 그랩이라는 어플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추천을 했었나 보다 싶어서 우리도 다음부터는 그랩을 이용하기로 하고 억울한 택시비를 지불했다.
우리가 필요했던 어댑터, 냄비셋트, 후라이팬 그리고 기타 먹거리 등을 사서 숙소에 돌아온 우리는 가장 먼저 한 달 동안 먹을 김치를 담으면서 말레이시아에서의 한 달 살기 준비했다.
♡ 푸념 4
아내가 잠이 안 온다며 새벽까지 깨어있다. 덕분에 나도 이왕에 말레이시아에서 한 달 살기를 하기로 했으니, 나중에 말레이시아에서 노후를 보내게 된다면 어떤 방법으로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또, 아이들이 한국 교육체계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비전이 없다고 느껴질 때 아이들을 유학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알아봤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부모인 우리들만의 고민이었나 보다. 아이들은 말로만 유학가면 좋겠다고, 유학가고 싶다고 하고서는 그 방법이나 정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도 없는 것 같다.
교육을 잘 못 시켰을까? 자기의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었는데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로 태어나서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할까봐 너무 안쓰럽다는 이유로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들을 미리 미리 챙겨주고 싶었던 탓에 아이들이 원하기 전에 우리가 알아서 해줬던 게 잘못이었나 싶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제는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자고 이야기 했더니 아내는 자신이 어려서 너무 힘들게 살았다며 아이들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랬단다.
이곳 조호르바루에서 한 달은 정말 아이들이 스스로 뭘 할 수 있는지 지켜보는 한 달로 투자하고 싶다. 마음 급한 우리가 나서서 뭘 해주기보다는 아이들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방법은 무엇이 있으며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지 생각 좀 해봐야겠다.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새벽이다.
♡ 푸념 5
벌써 한 달 살기 5일째다. 과연 이번 한 달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핸드폰만 한다는 게 지금은 별로 보기 좋지 않지만 잔소리로 그걸 막는 것 보다는 자신이 느끼고 자기의 시간을 관리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기엔 아직 어린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느꼈을 때 더 효과적임을 알기에 이번 한 달을 투자해보고자 했다.
이번 여행이 물론 아내에게는 힐링트립, 아이들에게는 비전트립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도 비전트립인데 그동안 가이드역할을 하느라 내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이번 한 달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은 상태에서 난 뭘 얻을 수 있을까?
저녁식사를 하고 아내가 답답하다며 산책을 가겠다고 한다. 쇼핑도 할 겸. 아이들도 답답했던지 따라간다고 나서는 바람에 결국 나만 혼자서 숙소를 지키게 되었다. 덕분에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선물로 받았다.
몸은 분명히 쉬고 있는데 가슴은 답답하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내년에 한국에 돌아가면 뭘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걸까? 내 꿈은 어떻게 접근해서 실행에 옮겨야 할까? 회사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은퇴 시기는 언제로 해야 할까? 그 후의 삶은?
생각이 많아지니 머리가 아프고 가슴은 더 답답해졌다. 틀이 잡혀있는 게 하나도 없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가슴을 더 답답하게 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말레이시아의 밤하늘이 마치 내 심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캄캄하기만 한 밤이다.
♡ 포켓볼
엄마와 함께 쇼핑을 다녀온 아이들이 숙소 3층에 있는 공용 당구장에서 포켓볼을 치고 싶다고 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자기가 해결해 보는 것이 이번 한 달 살기의 숙제라고 말을 해주니 아이들끼리 1층 관리실에 가서 당구장 열쇠와 당구공과 큐를 빌려왔다. 관리아저씨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아이들도 영어로 이런 것들을 빌리는 것쯤은 잘 하는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아직은 당구라는 것을 어디서도 배워보지 못했던 아이들 이었지만 하나하나 가르쳐 주니 곧 잘 하곤 해서 가르쳐주는 재미가 있다. 한 시간 여 동안 자세를 바로 잡아주고 스트로크 방법을 알려주고 나니 이제는 엄마를 이기려고 든다. 물론 엄마도 많이 해본 건 아니었지만 서로 자존심 싸움이 붙었다. 아이들의 눈에 승부욕으로 불타오른 반짝임이 보인다.
결국 무승부로 끝나버린 게임이었지만 아이들 덕분에 온 가족이 당구장에서 포켓볼을 치면서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건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에 뿌듯하기도 하고 강한 승부욕으로 승리를 해보겠다는 아이들의 몸부림도 기특했던 시간이었다.
♡ 자막 없는 외국 영화
숙소 근처에 있는 쇼핑몰의 영화관에서는 매주 수요일에 하루 종일 조조요금을 적용해주는 이벤트를 한다. 영화 한편에 10링깃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3천원밖에 안하니 상당히 저렴하다.
아내와 나는 ‘터미네이터’를 보고 아이들은 ‘겨울왕국’을 보기로 했다. 한국에서보다 하루 빨리 개봉하는 ‘겨울왕국’을 보고 나서 친구들에게 자랑하려는 아이들의 기대가 영화관으로 가는 발걸음을 더 재촉했다.
극장에서 자막 없는 영화를 보는 것은 처음이라서 조금 긴장이 되긴 했다. 역시나 중간 중간 코믹한 부분이 있었던지 다들 웃고 있는 가운데 우리만 이해를 못해서 웃지 못하는 것이 조금은 창피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그래도 액션영화여서 그런지 대사는 다 이해하지 못했어도 전반적인 내용은 이해할 수 있어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아이들도 대사는 잘 알아듣지 못했어도 내용은 재미있었다며 잘 봤단다. 다행이다.
♡ 다음 여행지 예약
새벽 3시에 잠이 깼다. 조호르바루 한 달 살기 이후에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계획이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히 아이들은 아무 생각이 없고, 아내는 말로만 여기저기 가자고 툭 툭 던질 뿐 계획을 세우는데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리조트에서 푹 쉬며 즐기고 가자는 것에는 다들 동의해서 베트남 나트랑에 있는 리조트를 가기로 결정했다.
리조트 예약만은 직접 도와주겠다는 아내 덕분에 그래도 일이 좀 줄기는 했지만 리조트에 가기 전인 내년 1월 6일까지 일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이 없으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래서 여기저기 검색해보고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약하다 보니 어느새 아침이 밝아왔다. 그래도 새벽을 오롯이 투자해서 계획을 짠 덕분에 앞으로의 일정이 윤곽을 잡아갔다.
‘조호르바루 - 방콕 - 치앙마이 - 하노이 - 시엡립 - 호치민 - 달랏 - 나트랑 - 한국’
한국에서 출발할 때 계획했던 일정에 거의 맞춰서 귀국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계획을 정리하고 나니 긴장이 풀렸던지 온몸에 힘이 쫙 빠지면서 잠이 몰려왔다. 하지만 아침식사를 준비해야했기에 잠을 잘 수는 없었다.
요즘은 아무도 깨우지 않아도 아내는 8시쯤 일어나고 큰딸은 아침 준비하는 소리를 들으면 일어난다. 물론 막둥이는 밥을 먹자고 해야지 얼굴을 보여주지만 그래도 다들 조금씩 아침이 빨라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조호르바루에 와서 느끼는 것이지만 그랩이라는 콜택시 시스템은 정말 좋은 것 같다. 필요한 위치에서 콜 한 다음, 원하는 위치까지 미리 책정된 금액만 지불하는 시스템인데 마치 우리나라 카카오 택시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가격이 훨씬 더 저렴하고 승차 이력과 기사에 대한 정보까지 있어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확인할 수 있으니 믿음이 갔다.
그랩을 타고 조호르바루에서 가장 맛있다는 칠리크랩 전문점에 가서 기분 좋게 잘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쇼핑몰에 들려서 캐리어 하나를 또 샀다. 그동안 같이 여행 다니던 캐리어가 부서지고 깨져서 어쩔 수 없이 한국까지만 버텨줄 저렴한 캐리어를 하나 구입해야 했다. 스페인에서 캐리어를 구입한 후 두 번째 캐리어 구입이다.
♡ 싱가포르 관광
드디어 싱가포르 여행이다. 조호르바루에 들어온 지 13일 만에 숙소를 벗어난 처음 관광이다. 그동안 정말 무의미한 시간만 보내는 거 같아서 답답했는데 드디어 오늘 새로운 경험을 하러 출발한다.
오늘은 아이들이 앞장서서 안내를 해주기로 했는데 기대 반 걱정 반 이다. 걱정이 돼서 싱가포르 여행지들을 지도에 표시하고 캡쳐 해서 가족 단체 카톡방에 올려놓고 교통편도 미리 알아놓았다. 출발 전에 오늘의 코스를 물어보니 말만 앞서는 막둥이보다는 그래도 언니가 좀 나아서 오늘의 관광을 언니가 주도하기로 했다.
오후 2시쯤 점심을 먹기 위해서는 12시에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조금 늦게 출발하기도 했지만 낮 시간인데도 출입국장에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서 첫 번째 목표 장소인 차이나타운까지 가는데 무려 4시간이나 걸렸다.
오후 4시가 넘었으니 우선 밥부터 해결하기로 하고 큰아이가 알아본 중국요리 맛집을 찾아갔다. 꿔바로우가 맛있는 집이었는데 다른 메뉴들도 우리입에 딱 맞는 집을 용케도 잘 찾았다 싶어 칭찬해 주었다.
배부르게 먹고 차이나타운을 구경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서 머라이언 파크에 도착했다. 마리나베이와 머라이언을 실제로 보니 ‘아! 우리가 드디어 싱가포르에 왔구나!’ 싶었다.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가든스베이의 실내 정원 중 한 곳은 열대 식물들과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공존하는 희한한 공간이었는데 시원하게 에어컨이 틀어져있는 곳에서 어떻게 열대 식물들이 저렇게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 그게 마냥 신기했다.
예쁘게 생긴 선인장부터 크리스마스 장식과 동화 속 난쟁이 할아버지들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서 사진에 담고 싶은 곳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열대 정글을 실내에 옮겨놓은 곳이었다. 여기는 정말 더 대단하다. 하루 종일 관람해도 부족할 것 같은 다양한 식물들과 이걸 또 이렇게 전시할 수도 있구나 싶은 아이디어들. 사진을 찍고 또 찍어도 다 담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내는 이곳 식물원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아내의 모습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덕분에 나에게도 행복이 전해지는 듯 했다.
다음은 싱가포르 플라이어다. 대관람차인데 한칸의 크기가 성인 삼사십명은 들어갈 수 있을법한 넓은 공간이었다. 저녁 7시 쯤 탑승한 덕분에 야경을 볼 수 있었는데 싱가포르의 야경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마리나베이 앞의 분수쇼를 보러 가는 길에 마리나베이 쇼핑몰에 잠간 들려봤는데 여기도 두바이 몰 이상으로 크고 멋진 공간이다. 비록 날씨는 한여름처럼 더웠지만 예쁜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며놓으니 그나마 연말이라는 게 느껴진다.
마리나베이 앞의 분수쇼는 두바이 몰에서처럼 분수들이 춤을 추는 그런 분수쇼와 다르게 안개처럼 분사된 분수가 스크린역할을 하고 그 안개 분수 위에 레이져를 쏘아서 연출하는 방식이어서 약간 몽환적인 느낌도 주는 색다른 방식의 분수쇼였다.
다음날도 큰딸아이의 인도를 따라 싱가포르 관광을 시작했다. 미리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 길을 익혀놨었는지 싱가포르에서 유명하다는 셀피커피를 맛볼 수 있는 커피숍으로 주저함 없이 안내해주는 딸아이가 기특했다.
셀피커피는 방송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역시 뭐든지 직접 경험해봐야 그 실체를 알 수 있는 것 같다. 커피나 차위에 크림을 가득 띄우고 그 위에 식용색소로 된 컬러 프린팅을 해주는데, 현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바로 프린팅해 주는 방식이라서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다. 생각보다 해상도도 뛰어났다.
서로 자기들의 얼굴, 입, 머리에 빨대를 꽂아서 조금씩 찌그러지는 사진을 보는 재미도 독특했다.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고 발을 바쁘게 움직여 가든스베이의 음악 레이져쇼를 보기위해서 한 시간 전에 도착했는데도 앉아서 볼만한 자리는 거의 다 차고 없었다. 한참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어렵게 자리를 잡고서 기다리는 동안 스르르 잠이 들었었나 보다.
사람들의 함성소리와 음악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클래식 음악에 맞춰서 커다란 원기둥을 장식한 형형색색의 불들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게 정말 멋있다.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배경으로 깔아준 클래식 음악이 내 마음을 더 설레게 했다. 나중에 한국에 가면 오디오와 클래식 음반을 사야겠다는 욕심이 들 정도였다.
♡ 막둥이가 뭔 죄라고
싱가포르 여행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조호르바루 체크포인트를 통과하는데 검사관이 막둥이에게 뭐라고 물어보더니 어딘가로 데려가려고 한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내가 그 아이의 아버지인데 무슨 일이냐며 쫓아가 물어보니, 막둥이의 나이가 아직 어린데 여권에 도장이 너무 많아서 이상하다는 거다.
우리는 세계일주를 하고있는 가족이라고 말을 했더니, 여기는 왜 왔는지, 언제 와서 언제 가는지, 어디서 지내고 있는지, 다음 여행지는 어디인지, 오늘은 뭐했는지 등등 별걸 다 물어본다. 그걸 또 알아듣고 타박타박 대답을 하는 내 모습이 신기할 정도로 나도 영어가 많이 늘었구나 싶다.
그렇지! 14살 나이에 벌써 15개국을 경험하는 청소년이 얼마나 되겠는가? 부모로써 좋은 선물을 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었던 해프닝이었다.
♡ 다 같이 머리하러 가는 날
오늘은 다 같이 머리를 하기로 한 날이다. 그래서 조호르바루 체크포인트 근처의 쇼핑몰에 있는 미용실을 찾아갔다.
3층에 서로 경쟁하듯이 미용실들이 대여섯 개가 모여 있었다. 미용가격은 한국이랑 비슷했지만 현지 물가에 비하면 미용요금은 비싼 편이다. 잠간 머뭇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필요할 땐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미용실에 입장했다.
나는 바르셀로나에서 이발을 한 후 거의 두 달 만에 하는 이발이어서 짧게 해달라고 했고, 아내는 흰머리가 많아져서 전체 염색을 해달라고 했다. 막둥이는 한국을 떠나온 뒤 한 번도 머리를 안 잘라서 덥수룩해졌기에 투블럭 커트를 주문했다.
더듬더듬 한국어를 섞어가며 스타일을 확인해주던 예쁜 미용사가 머리를 다듬어 줬는데 그래도 의사소통이 완벽하진 않았던지 뭔가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커트였다.
아내는 염색만 하려고 했는데 머리가 많이 손상되었다고 뭘 더 한단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머릿결이 많이 상했었나 보다. 뭐 이번 기회에 기분전환도 할 겸 거금을 투자하자고 했다. 다행히 아내는 이곳 서비스가 정말 좋아서 마음에 든다며 기분좋아한다. 아내의 기분이 좋아지면 왠지 모르게 가족들의 분위기가 덩달아 좋아진다.
덕분에 숙소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고 경쾌하게 느껴졌다.
♡ 비자가 필요해
노트북으로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의 여행지를 살펴보고 있는데, 어라? 캄보디아는 비자가 있어야 여행이 가능한 국가다.
헉! 거기에 더해 우리 일정은 하노이 갔다가 캄보디아 들려서 호치민으로 가는 코스라서 30일 이내에 베트남 재 입국시에는 비자가 필요하단다.
이런! 큰일 났다.
비행기표와 숙소 예약은 이미 다 해버려서 계획을 변경할 수도 없다. 부랴부랴 알아보니 다행히 전자비자신청이 가능하고 인터넷상에서 신청하면 3일안에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고, 그걸 메일로 받아서 출력하면 된다고 한다.
다행이다.
그래서 바로 출력 할 수 있는 곳부터 검색해 봤더니 조호르바루에서는 어디에서 출력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방콕이나 치앙마이에서는 인쇄소 같은 곳에서 출력이 가능하다고 하니 거기서 출력하기로 했다.
새벽에 잠이 안 와서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해놓고 열심히 비자 신청을 했다. 캄보디아는 그나마 쉽게 신청 완료하고 결재까지 됐는데, 베트남비자가 신청이 잘 안되고 뭔가 오류가 계속 발생한다. 아무리 해도 안 되어서 일단 한숨 돌리고 다시 시도해보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 일어나자마자 제일 걱정되는 베트남 비자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어제는 접속이 잘 안 되서 답답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접속이 잘 된다.
다행히 베트남 비자도 가족모두 신청이 완료됐다.
이제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전자비자가 발급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 조호르바루의 한국 사람들
조호르바루에서 한 달을 사는 동안 매 주 주일이면 한인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고, 이곳 교회에서 매주 토요일에는 조호르바루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국어, 세계사, 수학 공부를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우리 아이들도 참여시켰다.
아이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우리 부부는 말레이시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과 학생들 공부에 대한 검색도 해보고, 우리처럼 아이들을 기다리는 다른 부모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한 달 살기를 마치는 마지막 주에 예배를 드리고 한 달 동안 다방면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숙소로 향하는데,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께서 우리 부부와 따로 차 한 잔 하자고 하신다. 무슨 일이지? 궁금한 마음으로 약속장소에 나가보니 남편분과 함께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분들은 한국에도 집이 있고, 말레이시아에도 집이 있어서 두 나라를 왔다 갔다 하시면서 노후를 보내시는 분들이었다. 우리가 가족여행을 하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에 좋았다며 본인들도 이렇게 외국에서 지내게 된 사연과 아이들 교육 등 여러 가지 경험담을 들려주셨다.
특히, 말레이시아에서 생활하기 위한 조건이나 장점 등을 상세하게 소개시켜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다.
한국보다 따뜻하고, 물가도 저렴하고, 사람들도 순박해서 생활하기에 너무나 좋다고 하신다. 음... 그래. 우리도 나중에 정년퇴직을 하고나면 노년을 이렇게 보내보는 것도 좋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