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으로 2_그리스 3
♡ 영어로 전화통화를 하다
잠자리에 일찍 들어서였을까? 새벽 2시쯤 되어서 눈이 떠졌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새벽은 이른 시간인데도 정신을 더 또렷하게 만들어 주어 더 이상 잠을 이어갈 수가 없게 만들어버렸다. 덕분에 다음 여행지인 산토리니에 대해 공부도 하고 미리 세워두었던 일정을 점검해 보기로 했다.
우리 계획은 아테네 공항에서 비행기를 이용해 산토리니로 간 다음에 자동차를 렌트해서 관광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예약시간이 좀 이상하다. 우리가 예약한 산토리니 행 비행기는 아침 7시에 출발해서 50분이면 산토리니에 도착하는데 자동차 렌트회사에 공항픽업을 요청한 시간이 12시다. 이런! 하마터면 공항에서 4시간이나 기다릴 뻔 했다.
이 사실을 알고부터 두통이 심하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우선 자동차 렌트를 신청했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예약변경을 시도해 보기로 했으나 이럴 땐 인터넷이 또 왜 이렇게 말썽인지 홈페이지 접속이 잘 안 된다. 그 후로도 한참동안 홈페이지 접속을 시도했는데도 결국 접속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업무시간이 시작되면 직접 전화를 해서 변경해야겠다고 생각하니 이제는 영어로 전화를 해야 된다는 부담 때문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침 9시 반이 넘었으니 이제 출근했겠지? 생전 처음 하는 외국인과의 전화통화다. 잔뜩 긴장한 덕분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리는 손에 힘을 꽉 주고서 메모지에 내가 해야 할 이야기들을 꼼꼼하게 메모해 보았다. 한 번, 두 번, 다시 읽어보고 수정한 후에 상황을 재현해 연습을 거듭하다 보니 긴장되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하다. 더 이상 바뀔 상황은 없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서 핸드폰을 들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렌트회사 사장님께서 말을 천천히 또박또박 이야기 해줬기에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고, 더 다행인 것은 내가 준비해놓은 시나리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대로 잘 되었는지는 내일 산토리니에 가봐야 알겠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예약변경을 마무리 한 나는 사장님께 “땡큐”하고 마지막 인사를 건내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어느새 곁에 와서 귀를 쫑긋하고 듣고 있던 아이들과 아내가 엄지 척을 해준다.
“우와~ 아빠 대단! 영어로 전화통화를 하다니”
뿌듯했다. 여행 중에 또 하나의 도전을 성공한 뿌듯함이다.
이러면서 또 하나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직접 해보지 않고 생각만 하는 것은 나를 더 힘들게만 만들고 아무것도 이룰 수 없지만, 직접 해보면 나에게 성공을 맛보여 주거나 비록 실패할 지라도 그것 자체가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재산이 된다는 것을.
실패가 두려워서 도전도 못해본 때가 더 많았던 과거를 반성해보는 귀한 경험이었다.
♡ 산토리니 가기 너무 어려워
산토리니행 새벽 비행기를 타기위해서는 새벽 3시에 숙소를 나서야 했다. 너무나 이른 시간이라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곳까지 갈 수 있는 교통편이 없을까봐 내심 걱정하며 숙소를 나섰다. 만약에 차편이 없어서 신타그마 광장까지 걸어가야 할 수도 있었기에 한 시간 일찍 길을 나선 것이다.
다행히 아테네는 새벽이 살아있는 도시였다. 유명한 관광지여서 였을까? 하늘은 분명 어두운데도 길거리는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고,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로 인해 무서운 적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도로 위를 시원하게 내 달리는 택시들 중에 하나를 불러 세워서 신타그마 광장으로 향했다.
신타그마 광장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는 벌써 자리가 다 차있어서 어쩔 수 없이 40분간 서서 가야만 했다. 새벽길을 달리고 달려 그렇게 아테네 공항에 도착했다.
먼저 수하물 보관소를 찾아가서 큰 캐리어와 배낭가방 하나를 위탁했다. 2박 3일 동안의 여행에 필요한 짐만 간단하게 챙겨서 가기위해 미리 계획한대로 수하물을 위탁한 것이다.
그런 다음 체크인을 위해서 데스크를 방문했는데, 안내원이 라이언에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보딩패스를 다운받아 와야지만 체크인을 할 수 있단다. 원래 예약할 때 그런 안내문이 있었나? 싶었지만 따져서 될 일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이 항공사의 모바일 앱을 설치하고 보딩패스를 다운받아서 안내원에게 다시 갔다.
이번에는 개인 짐이 많아서 추가요금을 내야한단다. 무슨 기호인지 모를 글씨들을 쪽지에 적어주면서 저 뒤쪽에 가면 계산을 해 준단다. 혹시라도 비행시간을 못 맞출까봐 걱정이 되어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동안을 왔다 갔다 한 후에야 겨우 안내원에게 보딩패스 다운받은 것과 추가 기내수하물 영수증을 보여주자 드디어 ‘오케이’란다.
‘그런데 왜 탑승권을 뽑아주지 않는 걸까?’
또 뭐가 잘못됐나? 싶어서 안내원에게 탑승권을 달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탑승권은 따로 없단다.
‘뭐라고?’
아테네 공항은 따로 탑승권을 출력해 주지 않는다. 그냥 다운받은 보딩패스의 QR코드부분을 스캔하고 게이트로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있다. 준비만 제대로 되어있었다면 너무도 편리한 시스템인데도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불편한 시스템이었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에 있다가는 점점 더 불편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겠구나 싶다. 급변하는 세상에 발맞춰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쳐가는 순간이었다.
체크인 수속이 좀 복잡해서 땀을 참 많이 흘렸던 아테네 공항이었지만, 뭐 어떻든 드디어 아테네를 떠나 산토리니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