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으로 9_이탈리아 3
♡ 자판기는 역시 어려워
로마 근교의 작은 마을 오타비아에 숙소를 잡은 우리는 로마 시내로 가기 위해서 기차역으로 향했다. 오타비아역은 역내 승무원이 없이 발권기만 있는 역이다.
처음 접해보는 발권기에는 영어가 하나도 없다. 이탈리아어로만 되어있는 발권기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나가는 아줌마를 붙잡고 도움을 요청했는데 이분도 발권기 발급에 익숙하지 않은지 이것저것 눌러보시더니 난감한 표정을 하며 이탈리아어로 뭐라고 하신다. 알아듣지 못하겠으니 더 답답하기만 하다.
이때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음이 급한 젊은 아저씨가 자기도 표를 사야하니깐 자기가 살 때 5장을 같이 사자고 영어로 제안하신다. 우리야 그저 감사할 뿐이다. 발권기에 익숙한 아저씨는 전문가의 포스를 뿜어내며 뭔가를 척척 누르더니 티켓을 받아서 우리에게 건네주고는 바쁜 발걸음을 옮기셨다.
어떻게 하는 건지 자세히 알아봐야 하는데 아저씨가 가버려서 우리가족은 서로 머리를 맏대고서 아저씨가 건네준 티켓을 분석해 보았다.
티켓에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역이 아닌 다른 역의 이름이 인쇄되어있었다. 이곳 방식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역을 찾아서 티켓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갈 역이 포함된 코스의 종착역을 클릭해서 구입하는 것이었다. 내일부터는 우리도 잘 할 수 있겠지.
로마에 오면 제일 먼저 봐야 할 곳으로 선택한 콜로세움을 관광하고 개선문과 함께 포로로마노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시내버스를 타고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광장이 있는 캄피돌리오에 도착했다. 캄피돌리오 광장의 뒤로 돌아가 보니 포로로마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가 있었는데, 그리스에서 이런 유적지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우리가족에게 큰 감흥은 없다.
♡ 감기에 걸리다
한국을 떠나 여행을 시작한지 2개월.
여행을 계획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관광지를 알아보고, 운전에 요리까지 너무 많은 것을 해서였을까? 몸살감기에 걸려버린 나는 오늘의 일정을 함께하지 못하고 가족들만 기차역까지 바래 다 줬다.
숙소에 다시 돌아와서 어제부터 흘린 땀으로 냄새가 지독한 몸을 씻어주고 혼자만의 휴식을 취해볼 생각이다. 하지만, 다음 여행지인 스페인의 숙소를 예약하고, 이탈리아와 남프랑스의 여행계획도 점검하다 보니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다.
집에서 쉬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남편이 걱정할까봐 어디 어디 갔는지 인증샷을 찍어서 보내주는 아내가 이럴 땐 참 귀엽다. 어제는 시간이 부족해서 못 갔던 진실의 입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었나 보다. 못내 아쉬웠었는데 잘 됐다 싶다.
저녁은 집에 돌아와서 아내가 직접 차려준다고 한다. 나갔다 와서 피곤할 텐데 아픈 남편을 위해서 요리까지 자처한다니 오늘따라 아내가 더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