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준비 3
세계일주를 가려고 하니 우선 주변 정리가 필요했다.
먼저 부모님께 말씀을 드려야 했다. 여행을 떠나면 당장 부모님을 뵐 수가 없으니 몰래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선 부모님 댁에 방문해서 우리 가족의 여행계획을 설명 드렸다. 당연히 예상했던 반응이 나왔다.
“뭐? 너희 제정신이니? 온 가족이 세계일주를 간다고?”
“잘 다니던 직장은? 뭐라고? 회사를 그만둬? 아이구야!”
“애들은? 뭐? 애들도 자퇴를 한다고?”
평소에 침착하고 사려가 깊으시던 어머니도 이때만은 흥분을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나 보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시고 침착하게 말씀하셨다.
“직장은 이미 그만 뒀다고 하니, 우선 다시 일 할 만한 곳부터 찾아보고, 여행 이야기는 안 들은 걸로 할 테니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와라. 다음 주에 다시 보자.”
어머니는 절대 우리를 이해해주시지 않으셨다. 회사에 다닐 때 혼자서 몇 개월 해외출장만 가도 혹시라도 먼 곳에서 무슨 일이 있을까 걱정되어 노심초사하시면서 새벽기도를 다니시던 어머니다. 더군다나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혼자도 아니고 가족이 모두 같이 간다니. 어머니로서는 이해하기 힘드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어머니가 틀렸어요. 저희가 결정한 대로 하게 허락해 주세요.’라고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께도 시간을 드리고 싶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부모님 댁에 방문했다. 어머니께서는 다시 물으신다.
“그래. 일주일 동안 잘 생각해봤니? 뭐, 너희들이 아무런 대책 없이 결정한 것은 아니겠지만 다시 회사에 다닐 생각은 없는 거니? 진짜 여행을 가야겠니?”
어머니의 눈빛에 모험심 강한 아들은 그저 걱정거리로만 보이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께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우리 가족은 여행을 가기위해 이것저것 챙겨보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께서도 지인 분들에게 물어도 보고 알아도 보고 하셨나 보다.
“내가 여기저기 물어보니까, 이런 큰 결정을 한 아들을 칭찬하고 도와주고 응원해줘야지, 그 발목을 잡으면 어떻게 하냐고 다들 난리였다.”
다들 자신의 자식이라면 허락해 주지 않을 거면서 남의 자식들에게는 정말 관대하시다. 덕분에 어머니께서도 생각을 조금은 달리 하셨는지,
“그러면 여행 이후에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을 잘 세우고, 위험한 곳은 가지 말고, 위험한 것은 타지도 말고, 조심조심해서 사람들 많은 곳으로만 다녀와라”고 허락하시게 되었다.
처가에서도 처형이 깜짝 놀라며 물으신다.
“애들은?”
“애들은 1년 쉬기로 했어요.”
“아니, 요즘 같은 세상에 1년 쉬면 애들이 공부를 따라갈 수 있을까?”
언제나 걱정이 먼저시다. 하지만 나와 내 아내는 꿋꿋하게 처형에게 우리의 소견을 이야기하고 무사히 여행을 마치도록 기도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또 다르다.
“야! 대단하다. 그런데 정말 갈 수 있겠냐?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던데. 요즘 TV에 나오는 빼빼가족처럼 여행하겠다는 거야? 잘 해봐라.”라고 이야기 하면서도 속으로는 “네가 과연 가능하겠어? 그러다 말겠지. 어떻게 아이들 학교까지 쉬게 하니? 요즘 그랬다가 대학도 못 가면 어떡하려고.”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가끔이라도 나와 연락을 취하는 사람들에게는 일 년 동안 자리를 비운다고 연락을 다 해뒀다. 페이스북에도 내 근황을 올려서 우리 가족의 여행을 알렸다. 물론 약간의 자랑이 내재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하는 거니까.
좋은 소리만 들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여기저기 알릴 곳은 다 알렸으니 여행준비만 하면 되었다. 이제 여행을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까지 만들어 놔 버렸다. 어쩔 수 없다. 이제는 떠나야 한다.
모두가 잘 아는 혜민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세상 사람들은 나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보통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생각만 하기에도 바쁘다. 남 걱정이나 비판도 사실 알고 보면 잠시 하는 것, 그렇다면 내 삶의 많은 시간을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걱정하면서 살 필요가 있을까?”
“이처럼 부처가 아닌 이상 자기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제발,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 다른 사람에게 크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남 눈치 그만 보고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즐겁게 살자. 생각만 너무하지 말고 그냥 해버리자. 왜냐하면, 내가 먼저 행복해야 세상도 행복한 것이고, 그래야 또 내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