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준비 4
여행을 가기로 결정 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건강검진이다.
여행 중에 어디 한 곳이라도 아프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병원에 가기도 힘들 것이고, 약국에서도 증상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울 텐데 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이겠는가. 거기에 더해서 외국에서 여행객이 병원에 가게 되면 그 병원비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가기 전에 건강검진을 통해 건강상태를 확인하고자 했다.
검진결과 아내의 갑상선에 제법 큰 혹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게 아무래도 암 인거 같다고 한다. 갑상선 암치료로 유명한 대학병원을 소개해주면서 정밀검사를 다시 한 번 받아보라고 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정밀검사를 받아보니 역시나 암이 맞다.
그래도 다행히 초기라서 제거수술을 통해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갑상선 암은 암도 아니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자기 갑상선에 암이 있다면 그런 반응을 보일까? 물론, 다들 진심으로 걱정해주는데, 나 혼자만의 오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씁쓸하다.
아내는 의외로 담담하다. 나는 걱정되어 죽겠구만. 의사선생님께서 갑상선에 있는 혹이 두 개나 되고, 이 혹들이 성대를 감싸고 자라고 있어서 떼어낼 때 다른 어떤 수술보다 조심해서 떼어내야 한다고 하신다. 성대를 잘못 건드리면 지금의 목소리를 잃을 수도 있다고 하신다.
‘과연 수술이 잘 될 수 있을까?’
아내는 걱정하는 나를 도리어 안심 시키려고 한다.
아내의 수술날짜가 잡혔다. 4월 8일. 불안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아내의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의사선생님 말씀으로는 다행히 수술이 잘 되었으니 걱정은 안 해도 된단다. 감사하다. 수술대에 올라가서 가슴 졸였을 겁 많은 아내를 생각하니 지금도 눈물이 난다.
오랜 시간을 두고 경과를 지켜본 선생님께서 5월말에 드디어 완치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도 갑상선을 반이나 떼어냈으니 호르몬 부족으로 몸이 훨씬 피곤함을 느낄 거라고, 무리하지 말고 잘 쉬라고 말씀해 주신다.
“세계일주 할 건데 괜찮을까요?”
라고 아내가 의사선생님께 여쭙자,
선생님께서 웃으시면서
“무리만 하지 마시고 여유롭게 즐기시면 문제없을 거예요.”
라고 안심을 시켜주신다. 감사하다.
원래는 1년 여행을 계획했었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여행기간을 단축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여행기간이 짧아져서 전체 여행경비가 줄어드는 바람에 감당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아내의 암수술 때문에 우리에게는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이미 퇴사를 해버린 나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 가족들을 돌봐 줄 수 있어서 좋았고, 암 수술을 한 아내를 편안하게 쉬게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어설프게 준비하고 있었던 여행을 꼼꼼하게 준비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여행을 다녀온 지금 아내는 아직도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고 있다. 귀국 후 바로 찾은 곳이 암을 수술했던 병원이었고 의사선생님께 상태를 점검받으러 갔었다. 선생님께서는 다행히 암세포는 없는 것 같고, 아직은 반절뿐인 갑상선에서 나오는 호르몬으로는 몸이 많이 피곤 할 테니 한 동안 더 호르몬제를 먹자고 하셨다.
여행 중에 계속 걱정되었었는데 다행히 암이 재발하지 않아서 감사하다.
아내는
“암이 아니라 더 큰 병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행복한 여행을 하고 나면 다 완치가 되었을 거예요.”
“이번 여행이 너무 행복한 시간이어서 갱년기가 뭔지도 모르고 지나간 것 같아요.”
라고 말한다.
여행이 주는 행복은 암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