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도 Dec 18. 2020

적당한 온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마음을 지키는 일

점심으로 먹으려고 고구마를 삶았다. 같이 곁들이기 위해 동치미를 그릇에 담고, 우유를 뜨겁게 데워 나무 쟁반에 준비한 것들을 담아 내가 좋아하는 창가 앞 책상 자리에 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우유는 손잡이가 없는 꽃무늬 유리잔에 담았다.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서 만든 작은 손수건으로 유리잔을 감싼 뒤 우유를 마신다. 몇 모금 마시다 보면 적당히 식어 딱 알맞은 온도가 되는데 그때부터는 손으로 유리잔을 감싸고 우유를 마신다.


그 따뜻한 온기가 손끝에서 마음까지 전해지는 순간, 복잡했던 마음에도 온기가 전해진다.  


요 며칠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의욕이 없어 시무룩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피로가 몰려왔다. 거기에 우려했던 일까지 터져버려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불편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자니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빙빙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문득,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수건을 전부 가져와 과탄산소다를 넣어 푹 푹 삶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뒤 선반 위의 먼지 들을 털어냈다. 청소기를 돌리고 밀대로 바닥을 밀고, 에탄올로 문 손잡이와 냉장고, 현관문과 거울을 닦아냈다. 하얗게 삶아진 수건을 세탁기에 넣어 빨래를 하고,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다 읽은 책들을 책장에 정리했다.


한바탕 청소를 마치고 나니 소란스러웠던 마음도 한결 잠잠해졌다. 청소 끝에 먹은 늦은 고구마 점심에 따뜻한 우유까지 더해지니 왜 그리 머리 아프게 시름을 하고 있었나 싶어 헛웃음이 났다. 한결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달콤한 고구마와 따뜻한 우유가 전해준 적당한 온도를 마음 곳곳에 새겨두었다.


내친김에 새롭게 하고 싶은 일들을 다이어리에 적어두었다. 매일매일 체크할 수 있도록 리스트 업을 해두고 간절한 마음으로 작은 다짐을 한다.


잠시 쉬어가는 중이니 너무 느슨하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급하지 않게, 충분히 괜찮은 하루를 위해 오늘의 시간을 요리조리 다듬어 볼 작정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무엇보다 내 마음을 지키는 일에 조금 더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나에게 필요한 건 결코 무너지지 않고 견딜 수 있는 내일을 위한 적당한 온도의 마음이니까.


고구마, 동치미, 꽃무늬 유리잔 속 우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