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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Dec 19. 2020

혼자만의 시간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했다

달력을 한 장 뜯어냈다. 또다시 달이 바뀌었고, 비슷한 듯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다. 일찌감치 일어나 다이어리를 펴고 열심히 줄을 그었다. 매일 해야 하는 일들을 칸칸이 적어두고 하나하나 체크를 해 볼 생각으로 아침부터 열심을 냈다. 적당한 온도와 햇살로 가득한 방 안의 공기, 고양이도 잠든 고요한 아침.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 시간이다. 내 몸과 마음을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나를 위한 혼자만의 시간.


참 지독하게도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함께하는 즐거움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주변에 좋은 지인이 있어도,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가 있어도 그 순간이 지나면 반드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빼앗기는 것을 굉장히 억울해하는 편이다. 언제부터 나는 혼자인 것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문득, 그 시작이 궁금해졌다.





이십 대의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지독한 이별을 경험했고, 길이 보이지 않아 갈팡질팡했다. 무기력하게 출근과 퇴근만을 반복하며 옥탑방 꼭대기에서 매일을 그렇게 살아내기 바빴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만 선명하게 남아있다. 혼자 떠나는 여행. 지독하게 외로운 여행, 나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여행. 스물다섯의 나는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혼자 길을 나섰던 그때, 온통 낯선 것들로 가득했다. 밥을 먹는 것도 버스를 타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쉽지 않았다. 1인 식사는 안된다며 거절을 당하는 일이 많다 보니 식당에 들어서는 일조차도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만 2005년 그 당시에는 여자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게 굉장히 시선을 끄는 일이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원하는 여행지를 결정하고 가는 방법과 버스 시간표를 노트에 빼곡하게 적어서 여행을 했다. 지도를 들고 다니며 길을 찾았지만 아날로그적인 그때 그 여행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가까운 곳을 시작으로 조금씩 거리를 늘려갔다. 경기도의 어느 농장이었다가 전라도의 녹차밭이었다가 교통도 불편한 섬까지 차곡차곡 혼자만의 발자취를 늘려갔다.


그렇게 혼자 여행을 다닌 지도 어느덧 15년이 흘렀다. 그 사이 여행을 비롯해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제법 많아졌다. 매번 혼자인 건 아니지만, 반드시 혼자만의 시간이 채워져야 관계도 유지될 수 있는 조금은 이기적인 40대가 되어 있었다.


2005년 4월 29일 혼자, 처음으로 경원선 꽃기차를 탔던 날그날의 목적지는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의포천 허브 아일랜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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