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런두런 이야기

엄마와 치매와 함께 6

by 길 위에서



기억은 왜곡될 수 있다. 나쁜 기억만 자꾸 인출하다 보면 좋은 기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허술한지 과학적 연구도 뒷받침한다. 기억에 앞서 첫 입력부터 허술하기 짝이 없다. 해마를 거쳐 형성되는 일화 기억은 듬성듬성하다. 같은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다 다르게 진술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엄마의 치매 때문에 생긴 사건과 당혹스러웠던 감정 좇아가기를 멈추고 숨을 돌린다. 그 시절에 좋은 기억은 없나?


부모님이 가끔 드신 유일한 배달 음식이 프라이드치킨이었다. 한 달에 한 번쯤 아버지가 전화로 주문하셨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불평하시며 전화는 걸지도 받지도 않는 아버지가 그 주문 전화만큼은 직접 하셨다. 메뉴와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갑자기 궁금하다. 치킨을 주문하고 나서 나더러 먹으러 오라고 전화하는 사람은 엄마였다. 그런 날은 치킨 한 마리가 우리 세 식구의 별식이 되었다.


그날도 치킨 점심을 먹었다. 비가 내린 덕분인지 한가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서둘러 일어서지 않고 꽤 오래 머물렀다. 띄엄띄엄 대화가 이어졌다. 아버지는 20년쯤 지난 일을 떠올리셨다. 어쩌다가 옛날 이야기를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그때 우리는 단독주택 2층에 세 들어 살았다. 부모님이 옛집을 팔고 서울로 와서 구한 첫 집이었고 내가 다니던 대학 근처 동네에 있었다. 1층에 사는 주인집과도 잘 지냈는데 이사를 나가려고 준비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싸움이 났다. 아버지가 큰소리로 뭐라고 외치면서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고 엄마가 그 뒤를 따랐다. 그 장면만 정지 화면처럼 내 기억에 남아 있다. 부모님이 다른 사람들과 다투는 모습을 처음 봤다.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그때 전세금 중 일부를 돌려받지 못했다. 그 집을 구하면서 작성한 계약서에 문제가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제야 따졌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는 옛 일을 상세히 말씀하셨지만 나는 그 사연을 지금 기억하지 못한다.


“돈을 떼인” 일은 그 뿐이 아니었다. 내가 외국에 나가 있었을 때, 아버지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외삼촌에게 500만 원을 장례 비용으로 맡겼다.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돈 갖고 와서 처리해라.” 외삼촌은 그 돈을 이웃에게 빌려줬다가 날렸다. 이웃이 이 집 저 집에서 빌린 돈을 갖고 도망가 버렸다.


사기당한 사연을 연거푸 들은 날, 거실 공기는 온화했다. 당시 속에서 치솟았을 화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힘을 잃었다. 말씀하시는 아버지 얼굴이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주는 듯 편안했다. 얘기 듣는 엄마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세상에! 아버지는 그걸 다 기억하시네. 나는 하나도 기억 못한다.”


장례 비용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장례 당부로 이어졌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가려고 염두에 두는 곳을 엄마는 반기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엄마는 어디 묻히고 싶어?” 우리 엄마다운 답이 돌아왔다. “나 죽으면 끝이다. 니 마음대로 해라.”


두런두런 나눈 이야기를 뒤로하고 부모님 집을 나섰다. 바람이 없어 비는 차분히 내렸다.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하고 사람이 띄엄띄엄 보이는 공원 길을 걸어 내 집으로 갔다. 그렇게 평온한 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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