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왠지 낯설어

엄마와 치매와 함께 10

by 길 위에서

병원에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엄마는 5층 입원실에서 요양병원의 2층 병실로 자리를 옮겼다. 두 층은 전체 구조도 거의 같았고 분위기도 비슷했다. 간병인 두 분이 공동으로 환자 6명을 돌보는 간병 체계도 같았다. 그렇지만 새로 배정된 병실의 위치와 병실 내 자리의 위치는 바뀌었다. 그 변화 때문에 문제가 일어났다. 엄마는 이전 자리로 가겠다고 우겼다. 휠체어에 앉아 복도를 지나갈 때면 직전에 머물렀던 위치의 방으로 들어가겠다고 고집했고, 방에 들어가서는 자리가 바뀌었다고 소란을 피웠다. 아무리 설명해도 받아들이고 잠잠한 것은 잠시일 뿐이었다. 나는 설득하다가 지쳐 엄마를 간병인에게 맡기고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기억을 못 하는 것이니 설득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치료 때문에 7개월 동안 병원과 요양병원을 여러 차례 오갔는데, 병실이 바뀔 때마다 고역을 치러야 했다. 두어 주 지나 자리에 좀 익숙해져도 다시 몇 주 주 지나 병실을 옮기는 바람에 또 혼란을 겪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혼란이 엄마에게도 내게도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요양병원 의사가 말했다. “어머니는 당신만의 세계에 들어가 계세요. 따님이 이렇게 찾아와도 반가워하지도 않으시죠?”


정말 엄마는 뭔가에 정신이 팔려 있거나 이상한 세상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병원에 들어와 고생하는 게 모두 딸 탓이었다. 분명히 나와 대화를 주고받는 데도 마음이 전혀 통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쓰러진 후 말씀을 전혀 못하셨던 아버지도 손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통하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말이다. 엄마와 나 사이에 철벽이 들어선 것 같았다.


요양병원에 들어간 이후로 엄마 얼굴은 더 어두웠다. 화난 사람처럼 보였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웃은 게 언제였는지 까마득했다. 간호사가 사진을 찍으려고 웃어보라고 하면 엄마는 웃는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은 했다. 입을 옆으로 벌리고 이를 드러냈다. 그런데 그 얼굴은 웃는 표정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기괴하기까지 했다. 나는 엄마 얼굴의 웃음 근육이 다 굳어버렸거나 조절 신경이 엉켜버린 게 아닌가 생각했다. 가끔이라도 다시 웃는 날이 오기를 막연히 소망했다.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싶었다.


2014년 3월 24일

간병인은 한동안 지켜본 뒤 이제 엄마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신발을 신고 이불 안에 들어가 더럽히는 일에 대처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엔 이불을 치워 놓더니 오늘은 낮 동안 덮고 있을 용도로 시트를 주신 모양이었다. 엄마는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아무 말도 못 했을 것이다. 남을 못살게 굴지는 않으시니까. 나를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울다시피 했다.

간식을 챙겨드리고 나오는데 간호과장이 날 불렀다.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문제를 또 이야기했다. 약을 써도 효과가 별로 없고 또 어지러울 수 있다는 지적을 반복했다. 지난 21일에는 한 번 주저앉기도 했다는 걸 오늘 들었다. 간호과장은 밤에는 침대를 가로지르는 가슴 압박대를 쓰는 데 동의해 달라고 했다. 일단 동의를 받아 두고 압박대는 꼭 필요할 때만 쓰겠다고 했다. 나는 동의서에 서명했다. 몇 달 전엔 넘어져서 눈 위쪽을 꿰매기도 했으니 반대할 수도 없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일기 중에서)


병실이 바뀐 뒤 엄마가 반대 편 복도에 서 있을 때가 있다고 간병인이 전했다. 어느 날 병원에 갔다가 복도에서 서성서리는 엄마를 내 눈으로 봤다. 엄마는 복도를 걸어가다가 멍하니 섰다. 제자리걸음을 하며 방향을 바꾸다가 또 한참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아니면 그곳이 어디인지 몰라서 그랬을까? 엄마의 온몸이 “여기는 왠지 낯설어.”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모습이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치매 환자에게 낯선 곳이 그렇게 힘들다는 사실을 나중에 치매에 관한 책에서 읽었다. 이사를 가서 집이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집에서 가구만 바뀌어도 치매 환자에게 큰 혼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엄마가 느꼈을 두려움을 짐작해 보면 몸서리가 쳐진다.


1년 후 지하철역에서 좀 이상한 경험을 했다. 지하철 6호선에서 내려 4호선으로 갈아타려고 걸어가다가 멈춰 섰다. 한두 달 사이에 여러 번 그 역에서 환승했는데 그때마다 4호선 하행선을 탔고, 그날은 상행선을 타야 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퍼뜩 판단을 못했다. 4호선 타는 곳에서 표지판을 앞에 두고 멍하니 서 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몇 초였을 짧은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조금 익숙한 방향으로 걸어간 것이었다. ‘내가 가려던 역이 어디지? 맞아. 00 역이지. 근데 이쪽은 반대 방향이잖아. 어떻게 가지? 아까 6호선 내린 곳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길을 찾아야 하나?’


정신을 좀 차린 나는 일단 나가는 쪽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그 역은 개찰구를 통과하지 않고도 반대편으로 건너갈 수 있는 구조였다. 길을 찾기는 했으나 당황했던 느낌은 오래 남았다. 내가 어디 있는지, 뭘 하려던 건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 모든 게 머릿속에서 흐릿했다. 그때 그 느낌에 ‘치매 체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아직도 내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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