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참 몰랐다

엄마와 치매와 함께 11

by 길 위에서

병원 부설 연구소에서는 인지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음악치료와 원예치료였다. 무료로 진행되는 단체 프로그램도 물론 있었다. 개인 부담 비용이 있는 인지치료 프로그램은 일대일 수업도 있고 집단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첫 수업은 검사를 겸해서 일대일로 수업을 받았다. 나는 엄마를 위해 음악치료를 신청했다.


처음 음악치료를 받은 날, 병원에 갔을 때 엄마는 자리에 없었다. 엄마를 찾아서 복도를 두리번거리다가 중앙 홀까지 갔다. 한쪽에서 따뜻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믿기질 않았다. 그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어본 게 얼마만이었나. 나만 보면 화부터 내던 엄마가 그날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뭘 했는지 물었더니 엄마는 피아노를 쳤다고 대답했다.

“무슨 노래?

“아리랑.”

“엄마 피아노 칠 줄 알아?”

“건반에 번호가 있어서 번호대로 누르면 돼.”

“아, 그랬구나.”

음악치료의 효과를 눈앞에서 보는 것 같았고 나까지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원예치료도 신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주 찾아가는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치료사 선생님들과 지내는 즐거운 시간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엄마는 음악치료와 원예치료를 각각 일주일에 한 번씩 받았다.


음악치료사 선생님 한 분은 엄마가 성가를 잘 부르신다고 말했다. 천주교 신자인 그 선생님이 엄마와 함께 성가를 불렀는데 어떤 성가든 엄마가 가사를 다 기억하고 불렀다고 했다. 놀라웠다. 인지 검사 결과로는 기억력이 1%도 안 되게 남아 있다는데 가사를 다 기억하다니!


내가 엄마한테 좋아하는 노래가 뭐냐고 물었다. 엄마 대답은 ‘가고파’와 ‘산 너머 남촌에는”이었다. 유튜브에서 성악가가 부르는 동영상도 찾아서 보여드리고 엄마와 같이 조용조용 불렀다. 엄마와 노래를 같이 부른 게 처음이었다. ‘내 고향 남쪽 하늘’로 시작하는 ‘가고파’는 쓸쓸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엄마의 고향과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그래도 가끔 엄마와 둘이서 그 노래를 불렀다.


엄마는 성가 아닌 다른 노래도 많이 알고 있었고 곧잘 따라 불렀다. 노래 가사는 보통의 기억과는 다른 부위에 저장되는 걸까? 음률과 함께 몸이 기억하는 걸까? 아무튼 신기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공연을 재미있게 보시는 걸 여러 번 봤지만 엄마가 노래를 많이 좋아하고 또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은 요양병원에 들어간 이후에 알게 되었다. 오십 년 넘도록 나는 엄마를 참 몰랐다.


엄마는 외할머니 이야기를 딱 한 번 좀 길게 하셨다. 외할머니는 마르고 작은 체격이었지만 매우 부지런하셨다. 열심히 일해서 친척을 돕고 종손 집안을 일으켰다. 마을에서 농사지은 곡식이 잘 팔리지 않았을 때는 트럭을 빌리고 운전할 사람을 구했고, 트럭에 마을 곡식을 몽땅 싣고 부산의 큰 시장으로 가 다 팔고 돌아오셨다. 여장부 같은 분이었던 것 같다. 어린 내 눈에도 강단 있는 분으로 보였다. 꾸미셨다면 고왔을 얼굴은 늘 검게 타 있었다. 옛이야기 후 엄마가 말했다. “니 외할머니한테 해 드린 게 하나도 없네. 나 사느라 바빠서.”


가고파 노래를 같이 불렀을 때 엄마의 이 말이 기억나 쓸쓸했나 보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나도 아쉬움이 크다. 엄마의 기억이 남아 있을 때 진즉 어린 시절이며 살아온 이야기를 많이 들어 둘 걸. 지나가 버린 기회는 어쩔 수 없는 것. 엄마의 마지막 십여 년을 기록하는 것은 또 다른 후회를 남기지 않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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